나의 만년

by yu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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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은 너무 쓸쓸하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기에 그런 감정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내가 줄곧 기다려왔고 가장 즐겁게 지낸 계절이 끝나가는 시점이 다가오면 이유 없이 우울해진다.


어느 계절이던 시기가 있다. 겨울은 11월에서 2월까지 봄은 3월에서 5월이듯 시기마다 그 계절의 특성이 진해지고 옅어진다 여름도 그렇다 더위가 한껏 올라오는 6월부터 열기가 정점에 달하는 7월 그리고 쓸쓸한 가을 공기가 스멀스멀 섞이는 8월 나는 이 8월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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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이 미묘하게 차가운 가을 공기는 나에겐 애증과도 같다. 여름의 열기가 한 풀 꺾이지만 그 의미는 곧 가을이란 뜻이기에 묘하게 슬퍼진다. 밤에 돌아다니는 걸 즐기는 나는 이 8월의 밤공기가 좋다 여름 공기가 시원할 수도 있단 것이 너무 행복하다. "모든 계절이 이 8월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잠시 해보게 된다.


동시에 너무 가혹하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日의 앞자리가 2로 바뀌어 갈수록 가을이 다가온 단것이 너무 뼈저리게 느껴진다. 이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서 나는 늘 그렇듯 밤의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 목적지는 항상 같다 과거의 내가 행복했던 장소로



3



가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확하겐 겨울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춥고 너무 냉정하다.

의복을 입기엔 좋은 온도를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점 나이를 먹게 된다는 것이 슬프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죽고 못살던 사람이 항상 입버릇처럼 써 내려간 문장이다.

그 문장을 과거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점점 희미해지는 과거의 기억도 덩달아 약해지는 체력도 모든 것이 체감된다.

나는 최소한의 책임만 갖고 살아가고 싶은데 주변에선 그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반쯤 죽어버린 나를 가만히 두었으면 좋겠건만 현실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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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이십 대는 스무 살의 초반까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진다. 뻔하고 아득한 현실만 가득하다. 그 안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며 죽기 직전까지 행복하다는 세뇌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제 내 인생에서 무엇이 남을까? 내가 다시 행복해질 순간이 올까? 혹은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사회가 좀 더 진보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진다.


아직 미친 듯이 젊은 나이지만 무언가를 위해 달려보기엔 아무것도 남아있지가 않다. 난 더 이상 도전하고 싶은 것도 무언가를 추구하지도 열정을 불태울만한 일도 전혀 없다. 이젠 인간으로서의 맛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다고 해야 할까 생각만 하는 빈 껍데기가 돼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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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얽매이는 나를 보고 광인이라 한다. 항상 여름에 미쳐있는 나를 광인이라고 한다. 나를 그런 광인으로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그러한 광기조차 없으면 나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난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지도 않다. 광인인 나는 이 이상의 인간관계가 너무나도 무섭다. 내 광적인 신념을 알게 되면 그 사람들은 어떨까 역겨워할지 슬퍼해줄지


나는 이 끝나가는 여름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끝나가는 젊음의 한 순간도 결국 다시 내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그 도시의 풍경도 모든 것이 안타깝다.


다시 그 시절의 풍경을 내 눈으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