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그림책으로 나를 탐구하다

by 인산 권민정


펜이 ‘장래 희망’란에 멈춰 있다. 정답이 떠오르지 않아 답을 쓸 수 없는 수험생이 따로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에겐 가장 쓰기 어려운 칸이건만 중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최대의 난제다. 난 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꿈이 없다고 말하면 어른들이 핀잔을 줄 것 같아서 어른들이 인정할 만한 진짜 같은 가짜 꿈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거짓말쟁이 같았고, 소심한 나는 어른들의 형식적인 질문일 뿐인데도 거짓말이 들킬까 조마조마했다.


나는 서른 중반에 다시 태어났다는 말을 종종 한다. 마흔이 가까워 올 때 내가 무럭무럭 자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성장의 근원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에게 계속 되묻게 되었다. 아마도 그림책이 아니었나 싶다. 내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읽었을 뿐인데, 이 책들이 자꾸만 내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오세란의 평론집 『읽기와 흔들기』 서문에 ‘우리는 문학을 통해 세상을 읽’지만 ‘이야기를 거듭 읽을수록 그동안 믿던 세계가 흔들리기도 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내 마음에 일어난 일을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지만 아마도 흔들리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는 느낌, 묻혀 있던 언어들이 꾸물거리며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느낌. 그때부터 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나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했다.


그림책은 글과 함께 그림이 전달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버러 쿠니의 『미스 럼피우스』는 그림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통찰하게 해 준 그림책이다. 주인공 앨리스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삶의 과제로 받아들여, 끊임없이 먼 곳을 여행하며 경험을 쌓고, 결국 바닷가 작은 집에 살면서 루핀꽃으로 마을을 아름답게 만드는 이야기다.


이 그림책에서 유독 내 마음을 흔드는 몇 개의 그림이 있다. 나를 울컥하게 하고, 두근거리게 했으며, 표현하기 힘든 웅장함을 갖게 하는 그림이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그림은 화가인 할아버지의 작업실에서 할아버지의 그림에 붓 터치를 하는 꼬마 앨리스의 모습, 성인이 되어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그녀가 현재의 모든 상황을 던져두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는 모습, 노인이 되어 바닷가 마을에 홀로 고립되어 사는 그녀가 루핀 꽃씨를 뿌려 마을을 아름답게 만들고,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아름다운 그림에서 내가 왜 울고 설레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순간들이 쌓여 새로운 시선으로 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나에게 어른은 완전무결한 절대적 존재였는데 그래서 어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 나를 표현하는 것을 늘 자제해 왔다. 그러니 어른의 공간에서 어른이 작업하던 그림에 손을 대는 앨리스는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내 숨은 욕구였다. 이 책을 통해 사랑하지 못했던 어린아이(나)를 만났지만,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러서 내 욕구를 발견하는 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홀로 여행할 수 있는 용기도 자유롭고 싶은 내 욕구이며, 루핀 꽃씨를 뿌려 마을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나를 벅차게 한다.


문득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속 젊은 여성 화가가 생각난다. ‘깊이가 없다’는 그저 작품에 대한 평가일 뿐인데도 주인공은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고 결국 자신을 잃는 비극에 이른다.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스스로 ‘깊이’를 강요하며 허우적댔듯, 나 또한 자발적으로 ‘착함에의 강요’에 허우적대며 나를 가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융은 무의식 속에 연합된 감정, 사고, 기억의 그룹을 ‘콤플렉스’라고 했다. 콤플렉스는 전체 인격에서 분리된 작은 인격과 같이 작용한다고 한다. 그것은 독립적이고, 그 자체로 추진력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는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내 환경이 엄격한 집안이 아니었음에도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권력이 보이지 않게 작동하였을 것이고, 여러 경험이 모여 나에게 잘못된 신념을 뿌리내리게 했다. 그리고 그림책이 그런 나의 모습을 보게 했다. 더 이상 착한 아이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림책을 읽는 일은 내 마음을 챙기는 일이다. 자주 마음을 들여다보고 살피게 했고, 그 과정에서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음은 물론, 사람이 좋아졌다. 아이에게 소리칠 필요가 없어졌고, 함께 사는 어른이 어렵지 않으니 웃을 일도 많아졌다. 단단해진 나를 느낄 수 있지만 나를 만들었던 습관과 패턴이 지워지지는 않아서 여전히 의식적인 도닥임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되돌아가지 않음을 안다. 내 감각이 그림책을 향해 있고, 그림책이 내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그림책을 펼친다. 피터 레이놀즈의 『점』은 새로운 출발이 어렵지 않음을 알게 하고, 『느끼는 대로』는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이 매력적일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나를 읽고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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