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습작] 돌림길

by 인산 권민정

“왜 이렇게 늦게 와? 엄마가 걱정했잖아.”

“학교 마치고 바로 온 건데.”

“지름길로 안 오고 또 다른 길로 왔지? 엄마가 아기 보느라 마중도 못 나가고 걱정되니까 그러지. 내일부터는 지름길로 와야 해. 알았지?”

호준이는 대답 없이 방으로 갑니다. 지름길로 빨리 와도 엄마는 호준이와 놀아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돌림길에는 호준이의 친구가 있습니다. 오늘도 길모퉁이에서 얼룩이를 만났지요. 얼룩이는 흰색과 노란색이 섞인 줄무늬 고양이입니다.

“얼룩아!”

호준이가 부르면 얼룩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가늘게 뜹니다.

“내가 왔어. 무지 심심했지?”

“야옹”

“학교에서 간식으로 쿠키를 받았어. 너랑 나눠 먹으려고 안 먹고 가지고 왔어. 맛있게 먹어!”

호준이가 얼룩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말랑한 쿠키를 반으로 쪼갭니다. 한 조각을 손바닥에 올려서 얼룩이가 먹을 수 있게 더 잘게 쪼개어 내밀어 줍니다. 얼룩이가 쿠키를 맛있게 먹습니다.

“오늘은 받아쓰기를 했는데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았어.”

“그래도 4개나 맞췄어. 지난번보다 1개 더 맞았다.”

“근데 내 짝은 90점 받았는데 속상하대. 이상하지?”

호준이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용히 털어놓습니다.

얼룩이는 말이 없지만 호준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줍니다.


골목을 지나 큰길로 나오면 공사장이 보입니다. 새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호준이는 철망 앞에 서서 큰 포클레인이 움직이는 모습을 봅니다. 저렇게 멋진 차를 운전하는 아저씨가 신기해서 쳐다봅니다. 입구에서 물을 마시며 쉬고 있던 아저씨가 호준이에게 말을 겁니다.

“학교 갔다 오냐? 너 매일 여길 지나가더라.”

호준이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너 여기 뭐가 있는지 알아?”

호준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저씨는 안전모를 벗고 머리를 긁적이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어. 아주 크고 오래된 나무. 동네 애들이 그 아래서 다 놀았지. 아저씨가 어릴 때 그 나무 위에 올라가다 혼이 나기도 했는데."

아저씨는 웃었습니다. 호준이는 아파트가 올라가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시멘트와 철근 아래 어딘가에, 그 느티나무의 뿌리가 아직 남아 있을 것 같았지요.

‘저기서 뿌리가 쑥쑥 자라는 건 아닐까? 그러다 나무가 커지면 나무는 아파트 옷을 입게 되는 건가?’

호준이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오늘은 봄비가 내립니다.

“오늘은 비도 오니까 꼭 지름길로 와. 지름길로 오면 7분이면 되는데 왜 빙빙 돌아오는지 모르겠네. 엄마 걱정하게 하지 말고 제 시간에 와야 해.”

엄마는 호준이에게 단단히 이르고는 아기를 보고 방긋 웃습니다.

‘걱정은 무슨! 아기만 좋아하면서!’

호준이는 오늘도 학교 정문을 나서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었습니다. 지름길은 왼쪽입니다. 비가 오니 얼룩이가 더 걱정되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얼룩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호준이는 두리번거리다 담벼락 뒤쪽 좁은 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호준이의 숨이 멈췄습니다. 얼룩이가 거기에 있었어요. 그런데 얼룩이 옆에 뭔가가 꼬물거리는 게 보입니다. 아주 동그란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꼭 붙어 있습니다. 얼룩이는 호준이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냥 천천히 눈을 깜빡입니다. 우산을 씌워주고 싶지만 틈이 좁아 우산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호준이는 틈 앞에 살포시 쓰고 있던 우산을 내려놓습니다.

“비 맞지 말고 우산 쓰고 있어.”

호준이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지름길로 갔다면 절대 몰랐을 비밀이었지요.


골목을 돌아 공사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아저씨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포클레인도 혼자 서 있습니다.

‘봄비 맞으면 느티나무 뿌리가 더 빨리 자라는 건 아닐까?’

뿌리가 솟아 나와 호준이를 향해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호준이는 빠르게 공사장을 지나갔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호준이는 흠뻑 젖어 있었어요.

“지름길로 오라고 했잖아!”

엄마가 아기를 내려 놓고 타월을 들고 뛰어왔습니다. 달려와준 엄마를 보며 호준이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지름길로 갔으면 못 봤을 거야.”

엄마는 잠시 멈췄다가 아무 말 없이 호준이의 머리를 닦아주었습니다.


그날 밤, 호준이가 잠든 뒤 엄마는 오래된 상자를 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이 있었습니다. 봄 햇살 그림이 그려진 낡은 표지. 엄마는 손가락으로 표지를 쓸어내리다 천천히 펼쳤습니다. 빛바랜 글씨가 나왔어요.


오늘도 돌아서 왔다. 지름길로 가면 재미없으니까.


엄마는 오래 그 페이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지름길로 갔으면 못 봤을 거야.’

호준이가 해 맑은 미소로 말했던 목소리가 들립니다. 엄마는 조용히 웃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엄마가 현관에서 호준이에게 말합니다.

“오늘 학교 끝나고, 엄마가 데리러 갈게.”

호준이의 눈이 빛납니다.

“아기는?”

“오늘 할머니가 오셔서 잠깐 봐 주신댔어.”

“엄마? 지름길로 와?”

엄마는 잠깐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 돌림길로."

봄볕이 두 사람의 등을 따뜻하게 밀어주었습니다.


*이 동화는 이성자님의 동시를 읽고 이야기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화의 소재가 된 이성자 님의 동시 '돌림길'도 함께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돌림길>

이성자


지름길 놔두고 왜 돌림길로 오는 거야?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지만

내 맘 모르는 소리


돌림길에서는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새로 아파트 짓는 공사장에서는

여기저기서 숨은 이야기가

불쑥 튀어 나올 것 같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올 때

지름길로 오면 7분

돌림길로 오면 15분 걸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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