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나들이가 얼마 만인지 모릅니다. 우리와 두리는 가운데 있는 엄마의 손을 하나씩 잡습니다. 엄마의 오른쪽에 있는 우리는 두리를 쳐다보며 묻습니다.
“두리야, 언니가 손잡아 줄까? 언니 옆에 올래?”
“아니, 괜찮아.”
두리가 거절하자 괜히 심통이 납니다. 우리는 엄마의 오른손을 놓고 왼쪽으로 갑니다. 두리가 꼭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풀고 가운데 서서 두 사람의 손을 잡습니다.
“언니 손 꼭 잡고 가야 돼. 그래야 길을 안 잊어 버리지.”
우리가 두리를 챙기는 척합니다.
하지만 두리는 곧 우리의 손을 놓고 엄마의 오른쪽으로 가서 손을 잡습니다.
엄마는 야쿠르트 배달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많아서 우리와 두리랑 놀아줄 시간이 없습니다. 어떨 땐 너무 피곤해서 놀아주지 못할 때도 있어요. 우리는 엄마가 너무 좋아서 두리보다 더 오래 엄마 손을 잡고 싶고, 두리보다 더 오래 엄마와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두리가 언니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는 두리와 싸우면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투덜거리고 싶어도 참습니다.
“학교 운동회를 하나보다.”
엄마가 담장 너머를 보며 말했어요. 우리는 운동회가 뭔지 궁금합니다. 키가 작은 우리에게 담장은 너무 높습니다. 안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립니다. 발뒤꿈치를 들어봐도 소용없습니다. 좀 더 뒤로 가면 볼 수 있을까요? 엄마 손을 놓고 두 걸음 뒤로 갑니다. 목을 쭉 빼고 올려다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담장 위로 알록달록한 것이 지나갑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분홍 풍선들입니다. 스르륵! 풍선 혼자서 담장 위를 걸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와, 예쁘다. 엄마 저거 갖고 싶어.”
두리가 외칩니다. 우리는 눈살을 찌푸립니다. 엄마가 우리랑 놀아줄 수 없는 것처럼, 풍선도 사 줄 수 없다는 걸 두리는 잘 모르나 봐요. 우리는 두리가 떼를 써서 모처럼의 나들이가 망쳐질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잡고 있던 두리의 손을 놓습니다. 우리의 가슴이 철렁합니다.
어? 엄마가 담장 너머 누군가와 이야기합니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냅니다.
우리는 엄마 옆으로 다시 달려갑니다.
“우리랑 두리에게 주는 엄마의 무지개 선물이야.”
엄마가 속삭이며 풍선 두 개를 우리에게 내밀었습니다. 빨간 풍선과 노란 풍선. 마치 엄마의 사랑이 색깔 옷을 입고 우리에게 날아온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음에 풍선이 들어간 것처럼 기분이 둥실둥실 떠올랐어요.
“난 빨간 풍선.”
“난 노랑.”
우리는 가장 예쁜 빨간 풍선을 차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빨간색은 엄마의 따뜻한 마음을 제일 많이 담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이제 집으로 갈까? 엄마는 저녁 준비해야 해서.”
우리와 두리는 이제 집에 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무지개 풍선이 있으니까요.
“엄마, 시장에 다녀올게. 밖에 나오지 말고, 풍선 가지고 잘 놀고 있어.”
엄마가 저녁 준비를 위해 시장에 갑니다.
우리는 엄마가 없어도 무섭지 않습니다. 두리랑 함께 있으니까요. 오늘은 예쁜 풍선도 있네요.
“우리 둘이 사이좋게 놀자.”
“응, 언니!”
풍선 줄 아래에 있는 손잡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풍선 치기 놀이를 합니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예쁜 풍선을 손으로 툭툭 치려니 우리는 아까운 마음이 듭니다. 풍선을 놓고 보기만 하려니 재미가 없습니다. 두리의 풍선보다 더 오래 엄마의 빨간 풍선을 간직하고 싶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순간 반짝하고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두리야, 풍선 재밌지?”
“응.”
“오늘도 가지고 놀고, 내일도 놀았으면 좋겠지?”
“응.”
“그럼, 언니 풍선을 장롱 속에 넣어서 내일 가지고 놀까? 그러면 오늘도 새 풍선, 내일도 새풍선으로 놀 수 있어.”
“응.”
“오늘은 네 풍선 가지고 같이 놀자.”
“응.”
우리는 두리가 말을 잘 들어주어 기쁩니다. 세상에서 제일 착한 동생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빨간 풍선은 고이 장롱 속에 넣어 문을 꼭 닫았습니다.
‘이러면 엄마의 빨간 풍선은 오래오래 새것처럼 내 것이 될 거야.’
우리의 풍선이 마치 두 개가 된 것 같았습니다. 엄마의 사랑도 더 많이 차지한 것 같습니다.
들뜬 기분으로 두리의 노랑 풍선을 함께 가지고 놉니다. 한 개를 가지고 둘이서 놀았는데 싸우지 않았어요. 심지어 더 재미있게 놀았답니다. 시장에서 돌아온 엄마는 우리와 두리가 사이좋게 노는 모습이 흐뭇한가 봅니다. 세 식구가 저녁을 먹을 때 엄마는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합니다.
“우리가 오늘은 두리랑 잘 놀아주네.”
우리는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에 어깨가 으쓱 올라갑니다.
밤이 깊어지고, 우리는 잠결에 목이 말라 일어납니다. 그때, 장롱 쪽에서 ‘스윽, 스윽’하는 아주 작은 마찰음이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숨을 죽입니다.
‘혹시 두리가 몰래 내 풍선을 보려고 장롱을 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잠에서 확 깨어 장롱 쪽을 노려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잠시 후, 아주 희미하게 ‘쉬익...’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빨간 풍선이…… 괜찮아야 하는데.’
우리는 늦잠을 자다가 두리가 풍선을 망가뜨릴까 봐 서둘러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엄마가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던 다정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를 바라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두리가 말합니다.
“언니, 풍선 치기 하자.”
이불에서 쏙 나온 두리가 머리맡의 풍선을 가지러 갑니다.
“잉, 내 풍선. 쭈글이가 됐어.”
밤새 바람이 빠져 풍선은 작아지고 주름이 생겼어요. 두리의 목소리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의 가장 큰 사랑, 빨간 풍선은 장롱 속에 새 풍선 그대로 있을 테니까요. 분명 두리가 풍선을 같이 가지고 놀자고 할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풍선 바람이 빠질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줄 생각까지 합니다.
“내 풍선을 꺼내야겠다.”
우리가 이불 속에서 한달음에 가려다 그만 이불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아고, 아고고!”
이 정도는 아프지 않아요. 두리도 장롱 쪽으로 쫓아 옵니다.
“잠깐, 언니가 꺼낼게. 거기 있어. 언니 풍선이잖아.”
우리는 제법 주인 행세를 합니다. 두리는 곧바로 멈추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장롱문을 엽니다.
어? 풍선이 없습니다. 반짝반짝 새 풍선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합니다. 쭈글쭈글한 빨간 풍선만 장롱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언니 것도 쭈글이 됐네.”
“내 풍선은 한 번도 안 가지고 놀았는데……!”
우리의 부풀었던 가슴에도 바람이 슝 빠져나갑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 풍선도 신나게 두리랑 가지고 놀걸. 엄마가 우리에게 똑같이 준 무지개 선물이었는데……. 아깝다.’
욕심부렸던 마음을 두리가 알아채지는 못하겠지요. 우리는 괜히 두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빨간 풍선이 우리에게 보란 듯이 “난 욕심꾸러기랑은 안 놀아.”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언니, 이것 봐. 지렁이 됐어. 노란 지렁이야.”
두리가 바람 빠진 풍선을 양손으로 조물거리며 비비자 길쭉한 지렁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빨간 지렁이를 만듭니다. 두리 덕분에 속상한 마음이 바람처럼 날아갔어요. 두리랑 노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욕심을 부렸나 후회됩니다. 엄마의 무지개 선물은 같이 나눠야 빛나는 것인데 말이에요.
“두리야, 우리 둘이 같이 노니까 재미있지?”
“응~~~”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