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어도 편안한 사랑에 대하여

by 야옹이

우리는 사랑을 생각할 때,

종종 흥분부터 떠올린다.

함께 떠나는 여행, 북적이는 장소,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들.

그 시간들이 관계를 증명해 준다고

은근히 믿는다.


그런데 인생을 조금 살아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흥분은 생각보다 쉽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자극은 누구에게나

잠시 가까워졌다는 착각을 선물한다.


조금 더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에 남는다.

아무 계획도 없는 오후에,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에,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편안한가.


말이 없어도 괜찮고,

침묵을 채워야 한다는 조급함이 없고,

각자의 생각 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와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는 상태.

그런 시간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것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유지하려면

계속 애써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느낌이 들 때,

그 관계는 이미

상당히 깊은 신뢰 위에 놓여 있다.


설렘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변화다.

그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피곤한 날이 있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저녁이 찾아온다.


그럴 때 관계를 붙잡아 주는 것은

더 많은 자극이 아니라

정서적인 안전감이다.

지금 이 모습이어도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말하지 않아도

이해받고 있다는 조용한 확신.


매력은 사람을 만나게 하지만,

함께 지내기 편안한지의 여부는 그 사람 곁에 머물게 한다.

아무것도 없는 날에도 서로 곁에 있고 싶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깊은 관계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관계는

늘 흥미로운 삶이 아니라,

조용히 숨 쉴 수 있는 삶일지도 모른다.

잘해낼 때가 아니라

지치고 평범한 날에도

함께 있어도 괜찮은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허전하지 않은 상태.

그 잔잔한 충만함이

오래 가는 사랑의 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

건강한 마음은 결국 삶 전체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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