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돌아보면
기억은 언제나 고르게 남아 있지 않다.
어떤 날들은 또렷하고,
어떤 날들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다.
이 차이는
삶의 중요도 때문이 아니라
얼룩의 유무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각자에게는
의식하지 못한 채 설정해 둔
삶의 기준선이 하나 있다.
그 선을 크게 벗어나는 일이 생길 때
비로소 감정이 요동친다.
기쁨, 분노, 슬픔, 억울함, 감탄.
이 감정들은
사건보다 먼저
삶에 얼룩을 남긴다.
반대로
기준선 안에서 흘러간 하루들,
무난했던 대화,
아무 일 없이 지나간 저녁은
좀처럼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것은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얼룩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얼룩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삼스카라와 닮아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한 번 남은 흔적은
의식 아래로 스며들어
다음 반응의 토대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얼룩이 하나씩 있을 때보다
쌓이기 시작할 때다.
가까이서 보면
그저 우연처럼 보이던 얼룩들이
시간이 지나 멀리서 바라보면
서로를 향해 연결된다.
마치 숲을 보기 전에는
나무만 보이는 것처럼.
비슷한 순간에 반복되는 상처,
늘 같은 지점에서 진해지는 감정,
특정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온기.
그렇게 얼룩은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패턴이 된다.
이 패턴은
자신보다 타인이 먼저 알아차린다.
“이 사람은 이럴 때 마음을 닫는구나.”
“이 사람은 이 지점에서 유난히 따뜻해지는구나.”
우리가 흔히 성격이라고 부르는 것의 많은 부분은
사실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누적된 얼룩의 색감일지도 모른다.
한 번의 상처는 기억이지만
반복된 상처는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 된다.
한 번의 기쁨은 우연이지만
비슷한 기쁨의 반복은
그 사람이 무엇을 향해 열려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래서 사람마다
고유한 색이 생긴다.
어떤 이는 짙고,
어떤 이는 옅지만
모두 다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자주 놓치는 부분이 있다.
얼룩이 남지 않은 영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날들,
감정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시간들,
기준선 안에서 조용히 흘러간 일상.
삶의 도화지에서 보면
그 부분은 공백처럼 느껴지지만
멀리서 보면
그건 여백이다.
여백이 없으면
얼룩은 숨을 쉬지 못한다.
패턴은 읽히지 않고
삶은 과밀해진다.
어쩌면 성숙이란
얼룩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얼룩과 여백을
조금씩 조율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괜히 마음이 크게 흔들릴 때,
이게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인지
아니면 예전부터 쌓여 있던 감정이
다시 올라온 건 아닌지
잠깐 멈춰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을
허무가 아니라
조용한 안정으로 받아들이는 일.
어느 순간 우리는
자기 삶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완벽하지도 않고,
깔끔하지도 않지만
멀리서 보면
분명히 나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림.
그 그림은
지워진 흔적이 아니라
겹겹이 남은 얼룩과
그 사이의 여백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