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각보다 적은 것을 알고 살아간다

by 야옹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아는 게 있나?
조금 아는 것들은 있다.
수학, 화학, 문학, 물리학, 영어 같은 것들.
하지만 대부분은
깊이라고 부르기엔 조심스러운 수준이다.
그나마 치과라는 영역에서
먹고 살 만큼 알고,
세미나를 통해
이 분야에서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삶과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정도.
아마 이것이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의 평균적인 풍경일 것이다.


짧은 생애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아주 작은 조각의 지식을 얻고,
몇 번의 인상적인 경험을 겪은 뒤
삶을 마친다.
그래서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경우수가 만들어진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각자의 삶이 전혀 다른 이유다.


가끔 상상해 본다.
만약 인간의 수명이
만 년쯤 된다면 어떨까.
아마 그때는
모두가 만능천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지식을 배신하지 않으니까.
지금의 우리를 보면
마치 인공지능처럼
뭐든 잘 아는 존재들이
자연스럽게 탄생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그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불완전한 상태로
너무 이른 확신을 갖는다.


그 지점에서
사람들 사이의 비교가 생긴다.
누가 더 아는지,
누가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런 비교 자체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회는 어느 정도의 기준과
서열을 필요로 한다.
다만 그것이
전부인 양 행동할 때,
조금 불편한 감정이 따라온다.


아주 작은 지식의 조각을
마치 세계의 전부인 듯
휘두르는 태도.
그 태도에서
개인의 오만을 넘어
인류 전체의 오만이 비쳐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문득
섬뜩한 예감이 든다.
자연 앞에서,
시간 앞에서,
우리가 언젠가
청구서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역사는 늘 그랬다.
영수증은 바로 오지 않는다.
조용히 쌓였다가
잊을 만하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그래서 진짜 지적인 태도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자주 멈출 줄 아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아주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이 한 문장을
마음속에 남겨두는 사람.


그 사람은
타인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자기 확신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람이
가장 깊은 이야기를 한다.
크게 말하지 않지만,
말에 무게가 있다.


우리가 느끼는 이 작아짐은
무력함이 아니라
정확한 자기 인식에서 오는 감각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지점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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