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외로움

by 야옹이


외로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혼자 있어서 느끼는 외로움도 있고,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느끼는 외로움도 있다.
지적인 외로움은
그중에서도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에 속한다.


이 외로움은
사람이 없어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곁에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웃고 있는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늘 혼자라는 감각이 남아 있다.


지적인 외로움은
이해받지 못해서 생기기보다
이해를 계속 시도해야 한다는 피로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생각을
매번 단순한 언어로 바꾸어야 하고,
맥락을 설명해야 하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까지
덧붙여야 하는 상태.
그 과정이 반복되면
관계는 위안이 아니라
작업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지적인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은
점점 말을 줄인다.
모든 생각을 꺼내놓기보다
일부만 선택해 공유하고,
나머지는 마음속에 남겨둔다.

이 선택은
상대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침묵은
종종 오해를 낳는다.
차갑다거나,
거리감이 있다거나,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는 그 반대다.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이
안쪽에 쌓여 있어
아무 말이나 꺼낼 수 없을 뿐이다.


지적인 외로움은
사람을 독립적으로 만든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사유의 세계는 깊어진다.
하지만 동시에
관계에 대한 기대는
점점 낮아진다.
“어차피 다 설명해야 한다면,
차라리 혼자가 낫다”는 생각이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이 지점에서
많은 관계가 멈춘다.
갈등이 있어서가 아니라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정신적 비용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적인 외로움을 겪는 사람일수록
관계에서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모든 생각을 이해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함께 있어도 되는 상태다.
설명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관계.


그래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비슷한 생각을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편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견딜 수 있느냐다.
지적인 공감은
지식의 일치가 아니라
존재의 허용에서 시작된다.


지적인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관계의 조건을 바꾼다.
속도는 느려지고,
선택은 신중해지며,
머무름은 더 귀해진다.


어쩌면 지적인 외로움은
사랑을 포기하게 만드는 감정이 아니라
아무 관계나 선택하지 않게 만드는 필터일지도 모른다.
그 필터를 통과한 관계는
적지만,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서는
비로소
이성이 잠시 물러나고,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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