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성공은 그 자체로도 눈부시지만,
때때로 그 성공을 누가 기뻐하는가를 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서울대 의대 합격.
그것은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사실상 ‘왕관’이다.
그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이 사라졌고,
얼마나 많은 욕망이 꾹 눌려 있었는지를
우리는 모두 안다.
하지만 그 왕관이
자식의 머리 위에 얹어지던 순간,
눈부셨던 건
자식의 표정이 아니라
그 곁에서 기쁨을 숨기지 못한 어른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엔
단순한 기쁨이 아닌
구제된 감정,
보상받은 인생,
존재의 복권이 당첨된 듯한 환희가 담겨 있었다.
자식의 성취에 이입된 어른의 감정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삶의 결핍을 가진다.
그리고 그 결핍은
누군가를 통해 채워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 대상이 자식이 되었을 때,
그 관계는 사랑을 가장한 기대의 투사가 되고,
자식의 성취는
단순한 결과를 넘어
부모 자신의 ‘성공 재해석’이 될 수 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자식 하나 잘 키웠다.”
“나의 삶은 이제 의미를 가진다.”
이런 문장들은
기쁨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정당화를 구하는 감정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이입된 성공은 기쁨이면서도 불안이다
자식의 성취에 감정을 이입하는 일은
한편으론 매우 인간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에 함께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따뜻한 일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동일시’로 넘어가는 순간,
부모는 자식의 삶을
자신의 인생의 ‘후속 편’처럼 다루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식에게서 삶의 통제권을 서서히 빼앗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성공은 본래 주인의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성공을 지켜보는 이가
그 성공 안에서 자신의 구원을 찾기 시작하면,
관계는 조용히 뒤틀린다.
어떤 성취는 축하해야 할 일이고,
어떤 기쁨은 조용히 감탄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내 것으로 흡수하지 않고도
충분히 따뜻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그 사랑이 끝까지 무겁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