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무하는 19세기 말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 경향인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체코의 화가로, 그의 작품들은 연극 '지스몬다'의 광고 포스터부터 이후 상업적 용도로 사용되었던 다양한 종류의 석판화, 우화, 벽화 등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순수미술과 상업예술을 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화가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3월 20일부터 7월 13일까지 진행 중인 이번 전시회 <아르누보의 : 알폰스 무화 원화전>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듯이 무하의 그림을 관류하는 하나의 일관된 소재는 바로 여성이다. 특정 제품이나 연극의 광고 포스터 혹은 장식용 그림에 있어서 그들 중 대부분은 여성을 등장시키고 있고 상업화된 미술과 여성을 연결하는 일이 대단히 흔하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누하의 그림 속 여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기시감과 미시감을 동시에 느끼게끔 만든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어쩌면 상업적인 미술에서 자주 사용되던 여성상과 구도, 여성의 몸을 조명하는 공통된 시선으로부터 오는 친숙함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그림 속에서 작가의 이상화된 여성이 고스란히 재현되었다는 사실과 그속에서 극도의 아름다움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느껴지는 낯섦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든 중세든 간에 과거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로 지금 현재를 바탕으로 현시대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모던/모더니티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이 개념은 1823년 스탕달의 평론집 <라신과 셰익스피어>에서 '낭만주의'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 그에 따르면, 낭만주의란 "사람들에게 현 상태의 관습과 신념 체계로 보아 가능한 최상의 즐거움을 주는 문학"인 반면, 고전주의는 "사람들의 먼 선조들에게나 최고의 기쁨을 주었던 문학"이다. 이렇게 해서 모던/모더니티 개념은 그 어떤 과거에도 얽매이지 않고 현시대를 바탕으로 현재를 옹호하는 명실상부한 단계에 이르렀다. 스탕달에게서 '모던/모더니티'는 낭만적/낭만주의를 의미하면서, 고전주의와 상이하고 대립하는 미학을 발전시켰다. - 조주연, <현대미술 강의>, p19.
아르누보는 유럽의 전통적 고전주의를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의 재현의 원리를 대변한 고전주의 미학에서 분리되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 미학과 그 맥을 함께 하지만 특히 포스터, 공예, 장식품 등과 같은 응용미술에 더욱 집중되었다는 측면에서는 구별된다. 그러한 시선에서 나는 무하가 여성을 그릴 때 사용한 비교적 단조로운 선, 정확히는 여성과 배경을 구분 짓는 선에 주목했다. 무하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유난히도 배경이나 장식에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보이는데 그것에 비해서 여성의 몸은 다소 평이하게 그려졌다는 인상을 전시 초반에 받았다.
위 두 작품인 <F.샹프누와/백일몽>과 <네 개의 꽃-백합>은 개인적으로 그림을 첫눈에 봤을 때 여성의 얼굴보다는 배경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의 경우 인물과 배경의 구분을 단조롭고 뚜렷한 선으로 확실하게 구분하는 일종의 만화적 처리보다 명암과 채도의 조절을 통해 처리하는 방식과 관련되는데, 무하의 경우 여성의 몸(일부 그림에서 사물까지도)의 아웃라인을 확실하게 잡아놓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 아래 그림의 경우, 해당 그림이 네 개의 꽃 - 백합, 아이리스, 장미, 카네이션의 연작이라는 점과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꽃을 여성으로 형상화한 것이기에 우선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여성과 꽃을 한데 묶어 그림이나 음악 등의 예술 양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지리하고 관습적인 것으로 치부되지만 그럼에도 꽃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알폰스 무하가 바라보는 여성과 꽃의 이미지처럼) 여성이 먼저 떠오르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오래된 관념이다.
"그의 여성상은 우아함, 감미로움, 거룩함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흔히 부드러운 선과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낸다. 그는 이러한 여성상을 통해 자연미와 인간미의 추구를 전달하며 당시 여성의 독특한 미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여성상 회화 양식을 창조하였다. (...) 무하는 화려한 선과 장식적인 형식으로 자연의 요소를 여성적인 이미지에 완벽하게 녹여냈다. 그는 자연적 요소와 인간적 특징을 융합하고 이에 예술적 의미까지 부여하였다. (...) 그는 창작에 있어 예술적 스타일과 형식적 표현에 중점을 두면서 동시에 작품의 의미와 감정적 표현을 강조했다. 그의 여성상 창작은 풍부한 개인적 스타일과 독특한 예술 기법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많은 수의 곡선과 유려한 선을 사용하여 여성의 부드러움과 완곡함을 표현한다." - 리톈런. 알폰스 무하의 회화 작품 연구 - 여성상 표현을 중심으로 (2023) : 4-10.
곡선은 여성의 육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넘어 무하가 그림의 소재로서 주목했던 모든 자연물을 표현하고 담아낸다. 그런데 이때 여성상 창작이란 무엇일까?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나의 시선은 배경에서 여성의 얼굴로 옮겨갈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무하가 그린 여성들의 얼굴은 엇비슷해 보이지만 획일화되어 있지는 않고,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를 이미 담아낸 채로 관객에게 보여지고 있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위의 두 그림은 알폰스 무하의 <사계> 중 <여름>과 <가을>로, 이번에는 꽃이 아닌 계절을 여성으로 형상화한 그림이다. 관객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그녀들의 얼굴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하나의 캐릭터로서 그림 내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기억으로 그리는 것이지 모델에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이때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 예술가의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관찰 가능한 외양의 진부함을 뛰어넘어 순간성과 영원성이 하나가 되는 상응의 세계로 뚫고 들어가는" 마음의 능력인 것이다.
- 조주연, <현대미술 강의>, p19.
여성이 지닌 관찰 가능한 외양의 진부함을 넘어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진 여성성의 창조.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이라도 상업화된 그림 속에서는 머지않아 진부해질 뿐이지만 무하의 그림 속 여성들은 개별적인 모델이 아니다. 자연이 여성의 배경이 되는 것인지 혹은 여성이 자연의 배경이 되는 것인지. 이미 순간성과 영원성이 하나가 되는 상응의 세계로 뚫고 들어간 그녀의 세계가 자연을 닮아있는 것인지, 자연이 스스로 경계를 허물고 이지러진 달처럼 그녀의 세계에 스며들고 있는 것인지.
앞서 언급했듯이 스탕달의 정의에 의하면 낭만주의란 "사람들에게 현 상태의 관습과 신념 체계로 보아 가능한 최상의 즐거움을 주는 문학"이다. 알폰스 무하의 출생으로부터 거진 16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무하의 작품이 1960년 이후 재조명을 받게 되었던 것에 이어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비록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지라도 한 시대의 관습과 신념 체계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인간미와 자연미의 통합적 표현이, 새로운 여성성의 탄생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유전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자연으로부터 제공받은 상상력이 예술적 기질을 추동하여 탄생한 무하의 여성들이 언젠가 다시금 시대의 요구에 맞춰 어떤 모습으로 변주될 수 있을지, 나아가 그 여성성이 뿌리가 되어 과연 새로운 여성의 얼굴을 하고 등장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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