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급했을까. 사랑하던 후배가, 그것도 아무런 기별도 없이 떠나버렸다. 대학 시절 함께 막걸리와 소주로 밤을 지새우며 같은 세상을 꿈꾸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노래를 부르며 미래를 이야기하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늘 그랬듯, 나 자신을 찾는 데만 급급해 그를 자주 만나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그의 부고 소식이 더 뼈아프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총론에서는 같았지만, 각론에서 달랐을지도 모른다. 사상적 차이가 있었던 걸까? 그러나 그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그는 내게 단지 귀여운 후배였고, 졸업 후에는 자랑스러운 후배였다. 꾸준함으로 타인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나이가 들수록 부러움과 존경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그에 대한 기억은 결국 그의 ‘인성’으로 남는다. 그는 영혼이 맑은 후배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따뜻했고,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묘한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좋았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내가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그에겐 없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중견 간부가 되어 전 세계를 누볐다. 무역학을 전공했던 나는 이미 오래전에 그 길을 접고, 인생의 쓴맛을 섭렵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반면 그는 중문과를 졸업하고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해외영업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한편으론 부럽고, 또 한편으론 자랑스러웠다. 그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후배들에게 "내가 아는 후배 중 최고다"라고 이야기했으니까.
한 번은 함께 청량산을 다녀온 적이 있다. 기창 형, 형기 형과 함께였다. 당시 나는 내 꿈이 조금씩 실현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날만큼은 후배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었고, 우리는 편안히 대화를 나누었다. 삶의 방향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누었던 웃음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러나 이후 내 삶은 곤두박질쳤다. 2023년과 2024년은 내게 최악의 해였고, 살아 있다는 자체가 신기할 만큼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 샤워를 마치고 카톡을 확인하던 중 그의 부고 메시지를 보았다. 몇 번이고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잘못 보낸 것일까? 아니었다. 상주로 그의 아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눈앞이 흐릿해지는 그 감정. 몇 년 전 스승이 돌아가셨을 때, 또 다른 지인이 떠났을 때 느꼈던 충격이 다시금 찾아왔다. 눈물이 났다. 무심히 돌아가는 세탁기의 소음이 그 슬픔을 잊게 만들려는 듯했다.
"그가 죽었다."
나는 그의 카톡 프로필을 바라보며 겨우 속삭이듯 이름을 불렀다.
"중화야..."
얼마 전 내가 책을 쓰고, 음악을 만들어 그에게 보냈을 때도 그는 답이 없었다. 그저 읽었다는 표시만 남긴 채였다. 가끔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 서로 안부를 물으며 대화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그렇게 또 한 인생이 갔다.
이제 나는 내 안에서 내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갈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매번 우리를 흔들고 질문하게 만든다. 그의 삶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의 부고장은 단순한 이별의 소식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기억될까?
그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후배였다. 그의 꾸준함, 맑은 인성, 그리고 타인의 본보기가 되는 삶.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자극이자 위로였다. 어쩌면 그는 떠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영원히 머물며 계속 나를 가르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인생이 그렇게 조용히 떠났다. 하지만 그의 맑은 영혼과 따뜻한 기억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