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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밥으로 여는 힐링 아침

혼밥의 조용한 사치

by 이문웅

혼자 산다는 것은 참 다양한 감정을 동반한다. 처음엔 자유롭고 좋다. 시간도 내 마음대로, 공간도 내 방식대로.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소한 일상들이 슬그머니 버거워진다. 특히 아침. 아침이야말로 혼자 사는 사람에게 가장 피곤한 시간 중 하나일 수 있다. 출근이나 약속이 없으면 굳이 뭘 챙겨 먹을 이유가 없다. 고구마를 하나 구워 먹든지, 어제 사둔 빵을 데우든지, 아니면 우유에 콘플레이크를 말아먹고 대충 끝내곤 했다. 그러다 요즘은 아예 안 먹거나, 아니면 좀 더 맛있게 먹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조미료. 내 몸, 아니 뇌가 조미료를 거부한다. 아침만 되면 뇌가 속삭인다. “제발, MSG는 넣지 마.” 그래서 국이나 찌개, 간편식도 어느 순간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정크푸드 같은 건 아예 아웃이다. 그런 날은 꼭, 입맛도 까다로워진다.


오늘 아침도 비슷했다. 습관처럼 냉장고 앞에 서기 전, 먼저 싱크대에 놓인 냄비를 본다. 어제 저녁에 먹고 남은 밥이 그 속에 들어있다. 누룽지를 빼면 고작 반 공기 정도 될까 말까. 숟가락으로 살짝 눌러보며 생각한다. '뭘 해 먹으면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질까?' 그냥 라면? 아니다. 뇌가 거부한다. 벌써 속이 느글거리는 느낌이다. 떡국? 어제 먹었다. 김치 수제비? 번거롭다. 김에 싸먹자니 좀 초라한 느낌.

설거지 몇 개를 마저 치운다.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다시 냄비를 본다. 그리고 냉장고를 연다. 텅 비어 있는 건 아니지만, 있을 만한 게 없다. 김치. 계란 몇 개. 마늘, 참기름, 그리고 오래된 고추장 한 통. 순간 떠오른다. ‘김치밥.’


어머니가 해주시던 김치밥이 문득 그리워진다. 볶지 않고, 달래나 콩나물 살짝 넣고 밥 위에 김치 얹고 참기름 한 방울, 그게 다였는데도 유난히 맛있었다. 뚝배기 냄비에 퍼지는 구수한 향. 따뜻한 밥 위에 얹어진 김치의 묘한 단맛.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 그거야."

남은 밥을 조심스럽게 주걱으로 긁어 모은다. 누룽지는 아까우니 남겨두고, 위의 부드러운 부분만 정돈한다. 작은 냄비에 옮겨 담고, 김치를 꺼낸다. 혼자 사는 사람의 주방은 단출하다. 칼이나 도마도 자주 쓰이지 않는다. 대부분은 가위 하나면 충분하다. 가위를 들고 김치를 냄비 위에서 잘게 자른다. 칼로 썰 때보다 식감이 살아 있는 듯해 나는 이 방법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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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打誤 저서 : 동아시아오딧세이, 행복의 공식, 대한민국 건국영웅들, 네오젠, 네오젠시티, 네오갱, 사미예찬, 트레 뻬르소네, 라이프캡슐 예명 : 이타오 AI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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