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의 수필>어느 일요일 아침

by 글의사

제목 없음.png


습관이란 무서운 거라서 쉬는 날에도 어김없이 다섯 시 반쯤 기상합니다. 사실, 그 시간에 일어나도 별 할 일은 없습니다. 빨랫감이 있거나 날씨가 도와주면 세탁기를 돌릴 수도 있지만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한다는 예보가 있어 빨래는 어제 대충 마무리했습니다. 이불속에서 뒤척이거나 뭉그적거리는 것도 뭐 하고 해서 아침 준비를 자청합니다.

궂은날이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부침개도 근래 자주 해서 오늘은 돼지고기 감자전을 준비했습니다. 돼지고기, 감자, 양파, 고추를 믹서기에 갈아서 얇게 부쳐내면 됩니다.

온 집안이 고요합니다. 작은딸, 마누라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재료를 다듬고, 쌀을 씻고 이것저것 챙겨 놓습니다. 하지만 기척이 나도 일어날 기미가 없는 마누라에게 심술이 나면 여덟 시쯤 깨우는데 오늘은 건드리지 않고 선심 쓰기로 했습니다.

감자전, 신 김치, 무말랭이 무침, 막걸리 한 사발 소반에 올려놓고 천천히 음미했습니다. 그때 만약 혼자가 되면 이런 풍경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이 시집가고 마누라도 없는 상태가 된다면…. 갑자기 씁쓸해졌습니다.

일을 끊임없이 찾아서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일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옥남 할머니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도 외로움이었듯이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다고 자신하는 나도 막상 닥치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럴 때 마누라에게 잘해주라는 진부한 얘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니 잘해주고 못해주고 간에 생명이 하늘에 뜻이라면 부질없는 소리지요. 가난한 사람과 여유가 있는 사람의 입장이 다르듯이, 옆방에 마누라가 자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상황과 혼자가 되어 뭘 먹는 일상은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아직은 그 상태가 되지 않았으니 짐작도 예상도 할 수 없지만, 오늘 아침 선심으로 빚어진 혼자만의 식사가 삶과, 인생, 늙음에 많은 상념을 던져줍니다.

글을 적는 동안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의 한가운데에서 어쩜 우울할 수도 있는 늙은이의 신음 같은 사연을 전하게 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빠의 수필>설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