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아내와 대화가 겉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면 상대는 긍정, 혹은 부정을 말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마련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일상의 대화가 뚝 끊긴 느낌이다.
한 예로 김치를 담그고 나면 그와 관련된 얘기를 서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요즘엔 통 말이 없다. 예전엔 배추의 상태는 어떠했고, 새로 구입한 고춧가루의 품질은 만족한가, 새롭게 시도해 본 양념의 변화가 김치 맛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등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고 갔는데 근래엔 그렇지 않다. 새로 담근 김치에 막걸리 한잔 하면서 사설을 풀기도 했지만 이 또한 반응이 없다. 빈말이라도 수고에 대한 말이 따라와야 하거늘 아내는 일언지하 대꾸 없이 자기 말만 한다.
옥상의 고추가 어긋나게 자라는 것이 햇빛 탓인가, 이번 고추는 매운 것이 모종이 좋아서였다는 등, 사소한 일에도 서로 소통하며 지내왔는데 지금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유일하게 주고받는 것이 아이들에 대해 이것저것 살피고 따질 때인 것 같다. 심각 한 건 아니지만 수시로 느끼게 되는 이 엇박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따금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와 술 한 잔 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꺼낸 적이 있는데 후배는 씩 웃으면서 그렇게 늙어가는 것이 인생이란다. 자기 부모의 대화를 옆에서 들어보면 형이 지적하는 현상을 똑같이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참 늙는 것도 서러운데 별게 다 신경 쓰이게 하고 우울하게 한다고 내심 지나치려 하고 뭐 어찌하겠어하며 지내고 있다.
엊그제 비교적 이른 저녁을 끝내고 아내가 시장을 간다고 해서 속으로는 '이 시간에...' 하고 그냥 내 방으로 올라가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까 아내가 내려와 보라고 한다. 조금 언짢은 표정으로 내려갔더니 수 십 종의 모종을 혼자 사 왔다. 집에서 시장까지는 약 2킬로 미터로 꽤 먼 거리다. 모종의 떡잎을 보니 방울토마토, 여주, 깻잎, 딸기 등. 낯익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는 모종을 대견한 자식 바라보듯 하면서 한 마디 한다. 모종을 사는 순간 기분이 좋고 설레었다고.
"응. 나도 그런 경우가 있어.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도착해 상자를 개봉하는 순간, 잉크 냄새가 확 풍길 때였지. 사실 요즘 온라인 서점은 책 소개도 자세하고 리뷰도 친절해서 어느 정도 내용은 이미 감지하고 있으면서도 실물을 마주하는 순간은 여전히 설레 인다"라고.
얘기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 하던 일을 계속하려는데 뭔가 죽비로 머리통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하고는 다른, 아내의 설렘에 참으로 무심했구나. 그러면서 가까이 있는 아내의 다름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다름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고 애쓰는 단체에 후원하는 것은 자기기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머리로만 이해했지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 아닌가. 이러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환갑이 넘긴 나이에 겨우 조금 알아차린 이 한심한 중년을 어째해야 하는가. 아, 혼란스러운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