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의 추도식
내가 결혼하던 해 다음 해가 시아버님의 회갑이었다.
그 해에 아버님의 첫 손주인 우리 아들이 태어났고 아버님과 같은 띠라고 특별히도 무척이나 예뻐하시고 좋아하셨다.
하루라도 빨리 보고파하셔서 첫 손주를 보여드리고픈 마음에 친정에서 간신이 3*7일 몸조리만을 최소한으로 마치고 시댁에 가서 지내기 위해 친정엄마의 배웅을 받았다.
그 당시 IMF로 우리가 살던 신혼 전셋집이 안 빠져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가 없었어서 시댁에 들어가서 살려던 예정과 달리 두어 달만 지내고 시댁 근처인 신혼 원룸에서 다시 지내게 되었다.
그래도 아버님은 우리 아들이 낮동안 아버님집에서 돌봄을 받으니 매일 볼 수 있어서 행복해하셨다.
퇴근하고 아들이 잠시 태평히 노는 사이에 급히 저녁을 해결하느라고 서서 국에 말아먹고 있는데 아버님이 보시더니 앉아서 먹지 왜 서서 먹느냐고 측은한 마음으로 말씀하시던 장면이 떠오른다.
워낙 말수가 없으셔서 실제로 나랑 나눈 대화가 10 문장 이내인 것 같은 기억에 실제로 그리 적은 건지 팩트 확인은 어려우나 사람은 말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나이 들어가는 요즈음, 문득 아버님이 나에게 건넨 말들은 전부 다 나를 측은히 혹은 배려하는 문장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게 제일 힘든 40대 초반에 아버님의 유일하신 아드님이 술에 만취되어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아버님께 토해 내며 모든 식구를 당혹게 하던 그 밤, 아버님을 향해서 되지도 않는 무슨 원망 어린 혹은 공격적인 말이라도 만들어 내야만 했는지 “이 여자가 매일밤 술을 마셔요!” 하는 무슨 일러바침에 “너는 안 마시냐!” 호통으로 대응하시던 순간, 나는 마치 아버님이 내 편을 들어주는 것만 같아서 놀라면서 아버님이 처음으로 멋져 보였다.
세월이 흘러 갑자기 노쇠해진, 우리 아들이 벌써 28살이나 되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는 연세가 되셔서 거의 근력도 다 소진되고 병세가 완연하실 때, 난 네덜란드로 단기 연수를 가게 되면서 가장 염려한 부분은 그 6개월 사이에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기적같이 아버님이 건강해지셨다는 소식에 안도를 하며 무사히 6개월을 마치고 귀국하여 처음 마주 앉아 식사하던 날 아버님은 내가 경험한 중 생애 최고의 죠크를 던지셨다. “서울시장이 우리 며느리가 꼴 보기 싫어서 아주 멀리 네덜란드로 유배를 보내 버렸던 거냐?” 나는 아버님의 그 과묵하신 성격에서 하신 며느리에게 던진 시크한 아주 긴 질문 같은 농담에서 며느리를 자랑스러워하시는 마음이 내 멋대로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혔다.
네덜란드로 떠나는 나에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와~~!”하신 친정엄마만큼이나 따스함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러고는 3달 후 아버님은 느닷없이 떠나셨다.
이기적인 내 감상으로는 마치 내가 한국에 와 있을 때 가시려고 기다려 주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며느리가 그 먼 곳에서 왔다 갔다 하려면 번거로울까 봐 기적같이 건강을 찾으셨다가 급작스럽게 떠나신 추이가 나를 그렇게 느끼게 했다.
아버님 상이라는 큰일을 겪으며 우리 부부에겐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는 어느 장례식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드물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항상 책임감 있게 자기 스스로 혼자서, 상의라고는 배운 적 없는 가부장적 태도가 아버님을 닮아 몸에 밴 나머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안 되는 아버님의 아들은 자존심만을 내세우며 다정함이라도 보이면 시체가 될 거마냥 나름 인내의 시간에 방향을 틀었다.
그 자존심을 치켜세워주며, 돌려세우기를 바라는 그 마음에 화답하지 않는 나의 이 결단의 원인으로는 길어진 수명을 탓해야겠다.
아이를 둘이나 낳은 상황에서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기는 겁이 나니 참아 온 그분의 아드님을, 시간을 아내에게 내주기를 끝까지 아까와하며, 관성적인 엔트로피 높은 사회생활을 이십 년은 더 즐기겠다는 자세를 고수하는데, 눈 감고 지낼 인내력을 내 나이 여성에게 이제는 바라면 안 된다.
누군들 외로운 노후를 보내고 싶을까마는 옆에 있어도 두배로 외롭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외벌이일 때나 성립 가능한 가부장적이라는 단어 하나로 미화되는 그저 이기심 자체임을 노후를 설계하다 깨달았다.
내가 미처 언급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최소 설거지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장착하기를 요구하는 아내에게 그런 조건을 내거는 것 자체가 미래가 좋지 않을 것 같다며, 서로를 향해 시간을 내어 달라는 아내의 요구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는 그 남자에게선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부터 알지 않았나...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냥 내가 너무 외롭다고 ‘징징’ 평생에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다 정리된 즈음, 갑자기 멜랑콜리해져서는 아버님은 시종일관 잔정을 내보이시진 않았지만 끝까지 내편이 되어 과감히 내 위주로 결단하지 못한 나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가신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든다.
비록 가부장제가 깃든 시대에 평생을 보내셨기에 아드님에게 그런 모습밖에 가르칠 수 없으셨으나, 대하기 어려운 며느리에겐 최대한 남이기에 측은한 마음을 나타내 보여 주시고, 순간적으로 아들에게 대응하기 위해서였을지라도 며느리 편이 되어 주셨던, 쿨한 농담을 할 줄 아셨던 아버님...
“하늘에서 평안하신 거죠? 아버님 며느리로 살았어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