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하대
회사 시스템이 아침에 출근을 하면 컴퓨터로 큐알을 찍어서 출근을 체크해야 한다.
이틀 연속 버스 파업으로 인해 2분씩 지각을 했다. 오늘은 다행히 파업이 협상으로 정상화되어 무사히 시간 안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청소여사님이 나가시면서 비밀번호 밑에 열쇠로 열어야 하는 잠금장치를 누르시는 바람에 문이 안 열리는 거다. 이런 낭패감이란... 삼일연속 지각이라니...
마침 로비에 청소해 주시는 남자주임님이 계시길래 다급한 마음에 “문이 안 열려요!” 외쳐 봤다. 오셔서 확인하시고는 열쇠를 가지러 가셨다가 오셔서 문을 따 주시는데 나도 모르게 시간이 넘어갈까 하는 조급함에 안 그래도 큰 내 목소리 톤이 올라갔나 보다.
“아니 왜 살살 말하셔도 되는데 이리 언성을 높이세요.”
“아 죄송합니다. 지각처리가 될까 봐 그래요. 큐알을 컴퓨터로 찍어야 하거든요.”
갑자기 든 생각이 내 앞에 있는 분이 원장이셨어도 내가 나 급하다고 그리 크게 요구를 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냥 미소 지으며 내 상황을 조용히 설명하지 않았을까?
내 앞에 계신 주임님이 오히려 자존감이 나보다 높으셔서 지금 나 무시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떠올랐을 수도 있으나 조용히 지적하신 게 아닐까. 아니다 무시하나 하는 마음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 나는 생각이란다. 요즘 사회적 센스가 좀 떨어지는 나는 유튜브로 많은 교육을 친절히 이건 이거예요 정확히 짚어주는 영상들을 통해 배우고 있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가 나한테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가면 ‘저 사람이 날 싫어하나?’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리 생각할까 봐 되레 인사를 열심히 하곤 했다. 그런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리 관심이 없어서 나의 존재 자체를 몰라서 인사를 안 한 걸 거란다. 유튜브샘님 왈~
또 누군가 나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하대체를 쓰면 이 사람이 나 지금 무시하네 생각하며 혼자 분해하는 스타일이었다. 근데 그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잘하는 생각이라니 그 생각도 조금 자제하려 애쓰며 살고 있다.
남편과 신혼부터 꾸준히 언쟁 소재가 된 것이 하대체와 시댁 식구들 앞에서 나를 무시하는 듯한 나를 우스갯거리로 소재 삼는 언행이었다. 그때는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무작정 감정적으로 표현을 했을 뿐이지 지금처럼 조목조목 가르쳐 주는 유튜브 선생님이 없어서 내가 왜 그런 느낌으로 항상 못마땅해하며 시댁에서 돌아오게 됐는지 몰랐다.
지금은 챗선생도 있다. 내가 어렴풋이 올케라는 단어의 하대하는 느낌에 대해 기분 나빠한 기억이 있고, 아가씨라거나 도련님 이런 단어는 체질적으로 목을 못 넘어 나와서 쓸 수 없었던 잔상이 있는데 챗선생왈 내 느낌들이 다 맞단다. 하대를 당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안다.
부럽다, 오늘 아침 남자 주임님의 방식이. 나는 왜 그렇게 조용하게 “그런데 왜 그런 하대체를 나한테 쓰세요?” 하지 못했던 걸까?
이제 나이가 50이 넘어서야 나는 조용히 남편에게 카톡을 통해 말했다. 하대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러겠다고 하는 남편에게 콕 집어 그런데 지금 “~하나?”는 하대체라고 알려주며...
갑자기 콕 집어 말할 수 있게 되니 갱년기력이 마구 보태지는지, 지난날 참고 말하지 않은 내 감정들을 폭포처럼 쏟아내게 된다. 이래서 갱년기가 사춘기를 이긴다는 말이 있었던 거구나. 우리 아이들 사춘기 때 내 갱년기를 할 것을....^^
단골미장원에서 미용사에게 친구에게조차 말하기 민망한 온갖 가정사를 얘기하며 감정 노동까지 시키고 힐링을 받고 오는 나는 어느 날인가 사과할 줄 모르는 남편에 대해 토로하자, 그분이 남편에게 조목조목 가르쳐서 이제는 본인 남편은 할 줄 알게 되었다며 방법을 알려 주신다.
남자들이 회사에서는 자존심 상해도 돈 받아야 하니 상사에게 설명도 하고 죄송하다고도 하지 않냐며 부부 관계에서도 그게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연습시켰단다.
아뿔싸! 우리 남편에게는 그럴 역할을 연습할 상사가 없었다. 그냥 직원에게 하대하며 지적하고 시키고 소리치는 역할만을 해도 되는 직장이었다.
연애 초반부터 못마땅한 점이 지금은 ‘웨이터 법칙’으로 유명해진 서빙하는 분들께 함부로 하는 사람을 멀리 하라는 법칙에 지금의 남편이 딱 해당되어 몇 번을 그러지 말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잠시 일을 도와주시는 분께 내가 그 싫어하는 ‘버럭 화법’을 쓰고 있다. 그게 일 하는 상대에게 입을 닥치게 하는 효과가 있어 효율적일 수는 있겠다.
이상하게 사회적으로 조금 인정받는 직위를 획득한 사람들에게서 간혹 반말투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같은 직위이나 겸손한 화법을 쓰는 사람도 물론 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문장, 화법체, 억양은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언어의 태도다.
사회생활에서는, 나 같이 그런 부분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런 상대는 마주치는 빈도를 낮추면 된다. 되도록 피하고 다른 같은 업 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안 만나면 된다.
그러나, 가족은 그게 불가능하네.
참고 참다 임계점에 다다르면 나오는 말들이 있다. 어느 지점에 다다랐다고 아무 때나 폭발하진 않는다. 발도 누울 자리 보고 뻗는데 하물며 평생을 참고 살아온 관계를 향해 험한 말을 그냥 날리진 않는다. 평생 고착된 관계가 있다고 이번에도 그걸 믿었다가는 기존의 상향평가된 중간성적표가 아닌 제대로 된 인생성적표를 받아 들 수밖에 없어진다. 갱년기력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되는 이유다.
인생 하반기도 무시받으며 보낼 수는 없잖나. 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맞네.
“남편, 평생 어렵게 돈 벌어 부모님 봉양하고, 아이들 양육하느라 고생했어. 아이들 부분은 고맙게 생각해. 나도 직장생활 30년이 넘은 지라 내 밥은 내가 벌어먹은 건 알려나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