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5일
글을 어떻게 시작할까 고심하다가 인터넷에 몇 가지를 검색해 보니, 박정희의 장례식은 1979년 11월 3일에 치러졌다고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날의 기억과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 이야기로 시작해 보아야겠다.
그날은 그 장례식 때문에 휴교령이 내려져 학교를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이유가 어떻든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고 동네 친구들과 하루 종일 잘 놀았다. 그리고 저녁 5시 30분이 되자 TV 앞으로 뛰어갔는데, 그 당시에는 하루 종일 TV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잠깐 한 뒤 낮에는 쉬었다가 저녁에 다시 시작하였고 저녁 방송이 시작되는 5시 30분부터 6시 또는 6시 30분까지 어린이 프로를 방송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는 하루 중 가장 고대하는 시간이었던 것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다른 날과 달리 그날 11월 3일 5시 30분에는 어느 채널을 틀어도 어린이 프로그램을 방송해 주지 않았고, TV 화면에는 무거운 음악과 함께 검은 배경을 뒤로하고 놓여 있는 향로에서 향이 피어오르는 모습만 보였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고, 조금 기다리면 뭐라도 해주겠지 하면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화면이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2, 30 분 뒤에야 오늘이 어떤 날인지 상기하고 분위기를 파악한 나는 크게 실망하였는데, 47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한 번씩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TV에서 보여주는 저녁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놓친 날은 그날 말고도 수없이 많았지만, 유독 그날이 기억나는 것은 큰 실망감에 더하여 옆에서 그 화면을 보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우시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의 눈물을 그날 처음 본 것은 아닌데, 다른 날의 경우는 어린 내가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될 만한 경우였기 때문에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할머니가 우셨던 이유는 이해가 바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후에는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영문을 몰랐고 어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할머니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일주일 전인 10월 26일부터 시작해서 이 날의 장례식을 거쳐 이듬해인 1980년 광주까지 이어진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이자 분기점이었던 시기가, 나에게는 그렇게 할머니의 우시던 모습과 검은색 TV 화면 속의 향불이라는 몇 조각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제 세월이 흘러 21세기도 어느새 26년째가 되어 지난 세기를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지금, 찬찬히 돌아보면 지난 20 세기의 시간은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의 1979년을 포함하여 이 땅을 참으로 험하고 격렬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1905년 을사늑약을 시작으로 1910년 공식적으로 나라가 망하면서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로 있었고, 해방과 함께 찾아온 분단과 전쟁을 지나서 참 다양한 독재자들을 경험하고 쫓아내 보았으며, 세기말인 1997년에 이르러서는 IMF 구제 금융 사태로 나라가 파산하면서 20 세기가 문을 닫았다. 물론, 그 시간 속에서도 사람들은 태어나서 자라고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꿈을 좇아 살았을 테고, 그동안 위의 몇 줄로는 담을 수 없는 기쁨과 슬픔, 성취와 좌절을 겪으며 각자의 인생을 만들어 갔을 것이다.
이제 21 세기가 되어 정신 없이 빠르게 변해온 세상에 허겁지겁 따라가며 살고는 있지만 내 인생의 전반부 30년이 20세기에 걸쳐 있다 보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더라도 10대와 20대의,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던 시간이 거기에 있어 정서적으로는 오히려 20세기 사람에 가깝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약 누군가 나에게 20세기로 돌아가 살고 싶은지, 돌아간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로 가고 싶은지 물어온다면, 음… 대답하기가 많이 망설여진다. 지금의 내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이루어서는 아니다. 아직까지 제대로 성취한 것도 없고, 인간적으로 그리 성숙해지지도 못했다. 단지 20세기의 그 어떤 시기와 시간도 굳이 일부러 가보고 싶을 만큼 매력을 느끼거나 호기심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는 달리 지난 세기에 대하여 향수를 느끼고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보고 싶어 한 사람이 한 명 있어 그 생각을 소설로 썼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
처음은 치매 환자들을 위해 과거의 특정 시대를 재현한 공간을 갖춘 병원을 세우는 것으로 소박하게 시작하는 이 소설은,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의 사연들을 통해 저자의 조국인 불가리아의 현대사를 조망한다. 한 때, 서양 사람들이 동아시아의 세 나라를 구별하지 못했듯 -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많겠지만 - 우리도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우리 못지않게 힘들었던 각 나라의 20 세기를 알게 된다. 불가리아도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자신의 나라가 속한 유럽에서 치러졌고, 그 끝에 결국은 공산화되었으며 1989년 자유화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궁핍과 억압을 견뎌야 했다. 자유화 이후에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딱히 나아진 것은 없고 그 시절의 후유증은 아직도 남았다.
특히나 치매에 걸려 이 병원을 찾은 미스터 N이라는 환자의 에피소드는 공산 불가리아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억압과 고통을 받았는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내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로 큰 여운이 남는다. N이 치매로 잊어버린 자신의 과거를 알고 싶어서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름 아닌 자신을 24 시간 감시했던 정부의 감시원이었고, 감시원의 고백을 듣는 과정은 N 본인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며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에게는 정말 마음 아픈 시간이었다.
이후, 이 병원은 유럽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유럽의 각 나라들이 과거의 어느 시대로 되돌아가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되며 나라마다 선택한 시대로 회귀한다. 유럽에는 나라들이 워낙 많아 모든 나라가 등장하지는 못하고 일부 나라에 대하여 그 나라 국민들의 선택을 보여주는데, 나라마다 간략하게 묘사하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그 나라들이 어느 시기을 좋았던 시대로 생각하는지, 서로서로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는 단순히 좋았던 시절로 가는 회귀가 아니라 퇴행이며, 현재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유럽에 대한 풍자이다. 과거로 회귀한 나라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고작 1차 세계 대전을 촉발했던 1914년의 사라예보 사건을 재현하는 것인데, 심지어 재현하는 이벤트 중에 암살당하는 황태자 역을 맡았던 배우 -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왕족의 후손 - 가 실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는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도 재현하게 되는데, 여기까지 읽고 다시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두 번째 페이지 가장 아랫줄의 문장
“1939년 9월 1일 이른 아침, 인간의 시간에 종말이 닥쳤다.”
을 읽어보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하려 한 메시지가 아주 명확하게 다가온다.
그날 이후로 세상은 아주 많은 것이 바뀌었고, 적어도 작가를 포함한 유럽인들에게 세상은 잠깐의 좋았던 시절이 있었을지 몰라도 조금씩 쇠락하고 무너져 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에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자신조차 전 아내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일이 생기고,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유럽 자체를 의인화했다고도 할 수 있는 가우스틴에 대한 기억도 모호해지고 있음을 고백하는데, 이것은 한 개인에게 진행되는 치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유럽이라는 문명이 앓고 있는 집단적 증후군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치매라고 하는 병은 다른 어떤 병과 달리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의 의미를 되묻게 함으로써, 환자 본인보다 지켜보는 사람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병이다. 작가 고스포디노프는 지금의 유럽 - 어쩌면 지구 전체 - 이라는 시공간을 뒤덮고 있는 공기를 들이마시고 관찰하며 느낀 것을 치매라는 질병에 빗대어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대로 있으면 치매 환자가 사그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이 세계도 고통스럽게 저물어 갈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