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0일
교토역에서 황토색으로 표시된 나라선 전철을 타고 종점까지 가면 노선 이름대로 나라에 도착할 수 있고, 교토와 나라의 중간쯤에 있는, 말차와 뵤도인으로 유명한 우지에 내릴 수도 있다. 그리고 교토역에서 딱 두 정거장만 가면 후시미이나리 신사에 갈 수도 있다. 나라선의 시작역인 교토역에서 이미 전철을 꽉 채운 승객 - 사실상 관광객 - 들은 후시미이나리 신사로 가는 이나리역에서 대부분 다 내리는데, 우리 가족도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역을 빠져나왔다.
꽤 이른 시간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에서 신사로 향하는 길은 방문객으로 이미 가득했다. 교토는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특히 이곳 후시미이나리 신사는 사람들이 붐비는 정도가 다른 관광지들을 한참 넘어선다. 청수사로 오르는 니넨자카, 산넨자카 길 정도가 좀 비슷할까.
그래도 역과 신사가 바로 붙어있는 덕에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 걷다 보면 오래지 않아 사진과 영상으로 보았던 엄청난 수의 도리이들이 서있는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 지도앱을 열어보면 “센본 토리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천 개의 도리이라는 그 뜻 그대로 검은색 밑동에 선명한 주홍색 기둥으로 이루어진 도리이가 산 위를 향하여 끝없이 이어지며 마치 터널을 만든 것 같은 곳이다. 그 이름이 처음 지어질 때는 도리이가 천 개쯤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천 개냐 만 개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 누가 이나리산에 있는 도리이의 수를 일일이 세어보았을까. 그저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도리이들을 보고 아주 큰 수인 “천”을 떠올렸을 것이다.
보통의 신사를 가서 도리이가 한 개, 많아야 두세 개 있는 것만 보다가 이렇게 많은 도리이의 터널 앞에 서니 그 강렬함에 일차적으로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마치 새로 칠한 것 같은 진홍색의 엄청난 기둥들은 신사라는 공간이 갖는 특유의 무속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한층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신사와 달리 후시미이나리 신사에는 왜 이렇게 만 개가 넘는 도리이가 산을 뒤덮고 있는 것일까? 찾아보니 이 신사가 모시는 이나리 신은 농업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업의 번창까지 관장하는 신으로 그 영역이 커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역사도 오래되어 무려 1,300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니,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 - 농사를 짓는 농부들과 장사를 하는 상인들 - 이 찾아와 복을 빌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과 그리고 소원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크고 작은 도리이들을 기부하기 시작했는데, 그 전통이 현대까지 이어지면서 이런 장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도리이들을 앞에서 보면 기둥이 깨끗하지만 도리이의 뒷면에는 그 도리이를 기부한 사람이나 단체의 이름이 큼직하고 상세하게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리이의 터널을 따라 이나리 산을 오르며 도리이 뒷면에 적힌 이름들을 보고 있으니,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여기 이나리 신사에 와서는 숨겨둔 그 마음과 바람을 아낌없이 다 풀어두고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름과 소속을 저렇게 보란 듯이 남겨 가면서 말이다.
이곳을 언제 다시 오게 될까 하는 마음에 정상까지 가보기로 하고 천천히 오르다 보니, 사람들도 많이 뜸해지고 걷는 게 좀 편해졌다. 그래도 여전한 도리이의 터널을 내 리듬에 맞추어 오르다가 문득 아주 예전에 읽었던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책의 한 페이지가 떠올랐다.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보았을 산티아고 순례길 - 아직 가보지는 않았다 - 은 프랑스와 스페인을 가르는 피레네 산맥의 중턱에 있는 산골 마을에서 시작하여 약 800 km를 걸으면 도달하는 산티아고에서 끝이 난다. 산티아고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곱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이 있고 순례자들은 이 성당의 대문 앞에 있는 “영광의 문”의 기둥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며 순례를 마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대리석으로 된 이 기둥에 800 년이 넘은 세월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손을 얹고 기도하다 보니 그 자리가 사람의 손 모양으로 움푹 들어가게 되었는데, 노터봄은 그 자국을 보며 “기도가 돌을 뚫고 들어간 자리”이자 “인간의 열망이 화석화된 증거”라는 감상을 남겼다. 대리석이 다른 돌보다는 부드럽다고 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위에 손을 얹었길래 돌이 파였을까 상상해 보니 순례자들의 그 간절한 마음 - 이미 800 km를 걸어왔으니 그들의 간절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과 결과물에 절로 경외심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곳 이나리산의 중턱을 훨씬 지나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도리이들을 보면서 걷다 보니 그 책에서 느꼈던 감흥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곳에 도리이를 세운 사람들도 각자의 간절함이 있었기에 일본 곳곳에서 찾아와 도리이를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륙의 서쪽 끝 도시인 산티아고의 한 성당에 남겨진 손자국과, 대륙의 정반대편인 동쪽 끝 거기서도 바다를 건너 한참을 더 가야 하는 교토의 이나리산에 끝없이 이어져 있는 붉은 도리이의 행렬은, 그 시작과 현현한 모습은 서로 달라도 긴 세월에 걸쳐 담긴 인간들의 간절한 열망만은 아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며 계속 오르다 보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도리이의 터널도 결국에는 끝나고 산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고갯마루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곳은 전망이 확 열리고 도리이들이 막고 있던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와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아이스크림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어서, 이 고갯마루에 도달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다 콩가루가 뿌려진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그 맛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산티아고의 순례자들이 성당 앞 기둥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순례를 마치듯, 이나리 신사의 참배객들은 이나리산 고갯마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참배를 갈음하는 것 같아 혼자 빙긋 웃었고, 당연히 우리 가족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며 땀을 식혔다.
콩가루 아이스크림의 의식을 충분히 마친 후 산의 정상을 가보았더니 정말 오래된 것임이 분명한 돌계단과 제단이 있었고 이곳이 비로소 이나리 신사이구나 느끼며, 조금은 진지한 마음이 되어서 풍요와 번창의 신에게는 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 가족의 평안을 빌고는 세월에 풍화된 돌계단을 되짚어 내려갔다.
내려가며 “우리 교토로 돌아가서 뭐 먹을까?’ 묻자 아내가 “마네켄 와플 먹어야지.”라고 한다. 아침 교토역에서 나라선 전철을 타러 갈 때, 역 안에 있는 ‘마네켄’이라는 와플 가게 앞을 지났는데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와플 굽는 냄새 - 그 냄새는 서울의 지하철역에서 파는 델리 만쥬의 냄새보다 훨씬 강력하고 맛도 아주 훌륭하다 - 가 엄청났었다. 아침에는 급히 오느라 사지 못했는데 아내가 못내 아쉬웠나 보다. 나와 딸아이는 바로 수긍하며 “그럼 우선 와플부터!”를 외치며 경쾌하게 하산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