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배운 언어의 힘

Milk Tea가 奶茶가 되면 달라지는 것들

by 정보라




8년 전, 중국 광저우에 한 달간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낯설게 다가왔던 것은 거대한 쇼핑몰의 풍경도, 익숙지 않는 향신료의 냄새도 아니었습니다. 커피숍에 들러 당연하게 마시던 아메리카노 한 잔이, 그곳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음료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커피 대신 거리를 채우고 있던 것은 밀크티와 과일주스 가게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라면 꽤 비싼 값을 치러야 맛볼 수 있는 망고주스를, 광저우에서는 한국의 커피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아주 가끔씩 마셨던 밀크티는 저에게 커피 대신 마시는 달콤한 음료 정도로, 그다지 특별할 것도 선호할 것도 없는 음료수였지요. 하지만 광저우에서 마신 한 잔은 달랐습니다. 광저우에 갔을 때 저는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음료 가게 중에서도 영어 간판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어요. 메뉴에 'milktea' 또는 'bubble tea'가 보이면 반가운 마음으로 사 먹었습니다. 밀크티에서 이름이 ‘milk tea’로 바뀌는 순간, 그 익숙했던 맛은 낯선 이국의 풍미를 띠기 시작했어요.


난징에서 살 때 밀크티를 즐겨마셨고, 밀크티의 세계가 다양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동네마다 늘어선 음료 가게에서도 빠지지 않는 메뉴가 바로 나이차(nǎichá, 奶茶)였습니다. 奶(나이)는 우유, 茶(차)는 차를 뜻합니다.

한국에서 흔히 마시는 건 버블티 정도인데, 중국은 기본 홍차 베이스 밀크티뿐 아니라, 녹차, 우롱차, 재스민차, 푸얼차 베이스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녹차에 우유를 더하면 은은한 말차의 쌉쌀함이, 재스민차에 우유를 더하면 향긋하고도 맑은 풍미가 살아났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토핑도 펄, 푸딩, 치즈폼, 코코넛젤리, 알로에, 팥 등 다양합니다. 또 재미있는 건 브랜드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어떤 곳은 차 향을 진한 전통풍으로, 어떤 곳은 달달한 디저트 느낌으로 만들기도 해요.

중국 사람들에게 차는 곧 생활이자 문화입니다. 밀크티가 나이차(nǎichá, 奶茶)로 다가오니, 한국에서 획일적인 맛이었던 밀크티가 중국에서는 왜 그렇게 다양한 종류와 맛으로 변신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언어가 바꾸어 놓은 맛의 기억 중 김치찌개도 있습니다.

김치찌개는 저에게 한국의 음식이고, 엄마가 떠오르는 고향의 음식이기도 합니다. 해외여행에서 쌓인 피로와 속에 남은 느끼함을 단번에 풀어주는 음식, 그것이 바로 김치찌개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먹은 김치찌개는 ‘泡菜汤(파오차이탕)’라는 이름으로 메뉴에 올라와있었습니다. 泡菜(파오차이 pàocài)는 김치를 의미하고, 汤(탕 tāng) 은 국이나 수프를 의미해요.

이름 그대로 김치가 들어간 국. 얼큰하고 깊은 맛의 찌개라기보다는, 김치가 들어간 국물 요리에 가까웠습니다. 어떤 곳은 설탕을 많이 넣어 국물이 달콤하기까지 했습니다. 김치찌개를 떠올리며 숟가락을 들었던 제게 파오차이탕(泡菜汤, pàocài tāng)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두바이에서 일하던 시절, 근무가 없던 어느 날, 중국인 동료와 일본인 동료와 함께 한국 식당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K-드라마를 통해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고, 특히 잡채와 김치찌개, 파전, 막걸리 같은 음식들을 꼭 맛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 식당에서 만난 것이 ‘Kimchi Stew’였습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함께한 일본인, 중국인 친구들도 맛있게 먹었어요. 아쉬운 것은 가격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먹던 가격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숫자가 메뉴판에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치찌개가 'Kimchi Stew’로 불리자, 맛도, 심지어 값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밀크티, Milk Tea, 奶茶(나이차 nǎichá), 김치찌개, 泡菜汤(파오차이탕 pàocài tāng), Kimchi Stew.
같은 음식을 두고도 이렇게 이름이 달라지면 맛이 변하고, 경험이 달라집니다. 그것은 단순한 번역의 차이가 아닙니다. 언어는 음식의 풍미를 바꾸기도 하고, 그 음식에 담긴 문화를 체험하게도 합니다.

저는 奶茶(나이차 nǎichá)를 마시며 중국 사람들의 차 문화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김치찌개를 통해 한국 음식을 낯선 식탁 위에서 새롭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언어는 설탕처럼 맛을 달리 만들기도 하고, 향신료처럼 경험을 풍부하게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함께 음미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익숙한 음식이 낯선 이름으로 불릴 때,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 그것이 제가 낯선 땅에서 배운 언어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