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어에 대한 사색

Compatibility, 삶을 같이 하는 관계

by 정보라



삶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삶은 곧 “경험하는 인간관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관계를 경험합니다. 가족 간의 관계, 친구 간의 관계, 부부간의 관계. 그 속에서 ‘궁합’이라는 주제를 빼놓을 수 없어요. 누구와는 잘 맞고, 누구와는 덜 맞고, 어떤 관계는 끌림이 있지만 또 어떤 관계는 힘겹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서도 친구 간의 궁합에 대해 나누고 싶어요.



영어 단어 중에서 ‘궁합’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아마도 Compatibility일 것입니다. 이 단어의 뿌리는 라틴어 compati에서 왔는데, com- 은 “함께(with)”, pati는 “겪다, 견디다(to suffer/ endure)”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Compatibility는 단순히 “잘 맞는다”가 아니라, “함께 견딜 수 있다” "함께 견딜 수 있을 만큼 잘 맞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기쁜 순간만 오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과 고난의 순간도 불시에 찾아옵니다. 진정한 궁합은 바로 그 모든 순간을 함께 버티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나누는 관계가 아닐까요.



저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원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함께해 온 친구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연애를 지켜보았고,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함께 겪었으며,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키우고 있고, 각자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슬픔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올해 초, 제 친구의 아버지는 2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제 친구는 한걸음에 달려왔어요. 아무 말 없이 그냥 꼭 안아주었지만 '내가 너의 맘을 알아.'라고 전해주는 친구의 목소리를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어요.

그 친구는 저의 흑역사를 다 알고 있습니다.
토익 시험장에 늦잠을 자서 가지 못했던 일, 임용고시 원서 접수 날 사진 규격이 맞지 않아 급히 사진관으로 뛰어갔던 일, 자격증 시험 과목을 착각해 엉뚱한 과목을 공부했던 일들, 그 외에 사소한 해프닝도 많습니다. 같이 만나서 밥을 먹다가 제가 옷에 음식을 흘릴 때,

“정보라, 너 또 시작이네!” 하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건, 그 친구가 저의 역사를 알고 곁에서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저는 조금씩 변했습니다. 꼼꼼하고 실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곤 하지만, 사실 그 뒤에는 허술하고 서툴렀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준 친구가 있기에, 저의 엉뚱한 본모습이 한 번씩 튀어나와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웃을 수 있습니다.


그 친구는 한 지역에서 꾸준히 살아왔고, 저는 여러 곳을 옮겨 다녔습니다. 사는 곳은 달랐지만 우리의 만남은 이어졌습니다. 오늘도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대전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습니다. 중간 지점을 찾다 보니 대전역이었어요.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이 드네요.

앞으로도 우리는 많은 순간을 함께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결혼하고, 언젠가 서로의 배우자를 떠나보내는 순간까지. 그리고 결국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마무리되는 순간에도 함께할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듯 끝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베프를 영어로 BFF라고 해요.


Best = 가장 친한
Friend = 친구
Forever = 영원히


한국어로 베프의 의미를 풀어본다면 저는 이렇게 표현할 것 같아요.


베=베개처럼 편하고
프=프로도 같은 평생 친구


반지의 제왕 영화에서 프로도는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용기 있고 겸손해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었어요. 친구는 화려할 필요도, 대단한 필요도 없습니다. 편안함과 소박함으로 가까워질 수가 있는 관계, 그것이 친구인 것 같아요.


저는 믿습니다. 삶의 여러 순간을 함께 겪어내며, 서로의 흑역사마저 웃으며 품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자산보다 귀하다는 것을요.

Compatibility. 함께 견디며 살아가는 힘.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누려야 할 가장 귀한 궁합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