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가 극심한 날 새벽, 집 앞에 사냥개 한 마리가 나타나 짖어댔다. 남동생과 자취할 때라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동생은 출장 가고 없었고 나 혼자였다. 잘 때 불을 켜고 있으면 오히려 안심되어 내내 집안을 환하게 밝혀 놓았다.
약수터 가는 좁다란 길 옆 주택가에서 살았는데 반지하였다. 우리 집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새벽 약수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길바닥 랜턴같이 느껴졌
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발자국 소리가 창문 틈새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저녁 늦게 내리는 비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멈출 듯 물러설 듯 가늘어졌다 굵어졌다를 반복했다.
사냥개는 빛을 물고 늘어지는 것처럼 처음에는 창문을 치더니 나중에는 집 입구 문쪽에서 짖어댔다. 창문 틈으로 확인한 녀석은 칠흑같이 검은 털에 붉은빛 눈동자를 가졌다. 그것은 불빛에 반사됐거나 내 두려움이 빚어낸 환상일 수도 있었지만 뭐라도 물어뜯고서야 물러설 태세였다. 그 모습을 창문 방범 틀 사이로 내다보며 숨이 멎을 정도로 떨고 있었다.
벽 틈 사이로 들어차는 비가 부엌 천장 벽지부터 들뜨게 했는데 여차하면 온 집안에 퍼질 찰나였다. 무엇보다 계속 짖어대는 사냥개와 불안하지만
내가 받들고 있는 천장을 번갈아 올려다보며 보호받고 있는지 갇혀있는지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불을 일부러 껐다 켰다 했다. 방범 틀 창문을 마늘 찧던 방망이로 요란스럽게 두드렸다. 사냥개가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가길 바랬다. 이 녀석도 갑작스러운 폭우에 주인 손을 놓치고 안전한 곳을 찾아왔을까 싶다가도 학대 받다 버려져 여름 장마의 매서움에 미쳐 날뛰고 있는 거라 생각됐다.
같이 미치기 시작했다. 말끝마다 '개새끼'를 붙이
며 세상 욕을 다 끌어다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후회와 원망이 투박하게 뭉쳐져, 불안한 이십 대 후반을 보내는 삶의 서사가 세상을 향한 욕설로 변질됐다. 1층에 살던 한참 자고 있을 주인집 여자가 갑자기 불을 켜고 잠옷 바람으로 나와 사냥개를 향해
- 썩 꺼져! 이 개새끼야!
말하기 전까지는 계속되었다. 장마가 지나간 뒤 눅눅해진 벽지 위로 곰팡이가 올라오고 때아닌 잔기침에 시달렸었다. 도배를 해 줄 것 같은 주인 여자의 걱정해 주는 눈빛은 오래 못 갔다. 남동생과 의자를 옮겨가며 그 위에 올라 곰팡이들을 닦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