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리뷰 : 실존의 관점에서

엄흥도의 관점에서

by 로즈마리


영화<왕과 사는 남자>에서 엄흥도는 청렴포가 속해있는 마을의 촌장으로 고관대작을 청렴포라는 유배지로 유치하기 위해 애를 쓴다. 표면적인 그 이유는 마을 촌장으로서 마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지만 그 이면에는 절절한 부성애가 끓고 있다. 그건 바로, 고관대작이 유배를 오면 촌마을에서 경전을 공부할 정도로 똑똑했지만 지금은 경전도 공부를 가르쳐 줄 스승도 없는 곳에서도 아들래미가 공부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였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과연 엄흥도의 인생은 콜버그의 도덕성 이론에서 몇 단계에 머물렀을까 생각해보며 감상을 이어갔다.


영화 초반의 엄흥도는 기브앤테이크, 가족을 위해서 나는 희생을 해야한다는 2-3단계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엄흥도는 단종이 청렴포로 유배를 오고 그와 유대감을 나누면서 성숙한 도덕성의 단계로 나아간다.

‘저도 임금이 잃지 않고 싶어하는 그 사람들에 속해 있습니까?‘라고 묻는 대목 이후에 엄흥도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율적인 선택을 한다.

이 대목에서 엄흥도를 성숙한 콜버그의 6단계 사랑과 존중의 도덕성, 실존의 삶으로 이끄는 토대는 단종이 준 사랑의 확신이었지 않나 싶다.

진솔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진정한 실존에 이르지 못했던 그를 진정한 실존으로 이끈 것은 사랑이다.

콜버그 6단계의 사랑으로 5단계의 약속을 지킨 엄흥도는 4단계의 법과 규칙의 엄격한 한명회의 그림지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다.

내가 도와야지라는 자율적인 선택의 개념이 자리할 수 없었던 시대를 생각해 봤을 때 엄흥도의 선택은 현실과의 타협이 아니라 최고의 자율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엄흥도가 자식에게 글공부를 시키고 싶었던 영화 초반의 목적을 넘어 결과적으로 엄흥도의 아들은 경전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아버지 엄흥도의 삶으로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단종과의 이별이 엄흥도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펐겠지만 그의 이후 삶은 사랑과 확신이 가득찬 실존의 삶이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단종의 시신을 거둔 자, 삼대를 멸족시킨다는 무시무시한 법 앞에서도 실존하는 엄흥도는 용기 있게 선택한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일을…

엄흥도의 실존의 뜨거운 용기와 선택을 마음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