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쑨원 옛집 여행,
인천 차이나타운 '공화춘' 짜장면집의 비밀
1. 인천 차이나타운의 가파른 언덕길, 혹시 붉은 건물 사이를 돌며 짜장면 한 그릇과 공갈빵만 손에 들고 오시나요? 화려한 금빛 간판 '공화춘(共和春)'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저녁 햇살에 반짝이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그 검은 춘장 냄새 뒤로, 3,000년 황제 통치의 사슬을 끊어내고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을 꿈꿨던 한 남자의 거대한 설계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2. 우리가 무심코 비벼 먹는 짜장면의 고향 '공화춘'은 단순한 식당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1912년 신해혁명의 성공과 함께 찾아온 '공화의 봄'을 찬양하는 혁명의 암호이자, 황제의 백성에서 국가의 주인으로 거듭난 '국민'들의 승전보였습니다.
3. 그 비밀의 첫 번째 열쇠는 '공화(共和)'라는 두 글자에 있습니다. 서양의 'Republic'이 동양의 한자와 만났을 때, 그것은 단순한 번역어를 넘어 '황제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가히 파괴적인 인식의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쑨원이 열어젖힌 이 새로운 시대는 혈통이 권력을 결정하던 낡은 유전자를 거부하고, 다수의 합의가 질서가 되는 세상을 설계했습니다.
4. 여기서 우리는 중국 역사를 관통하는 '세 명의 설계자'를 만납니다. 춘추전국시대 550년의 혼란을 문자와 법으로 통일한 최초의 설계자 진시황, 위진남북조시대 360년의 분열을 대운하와 과거제로 이어붙인 수문제. 그들은 짧게 머물렀지만, 그들이 남긴 설계도는 한나라와 당나라라는 거대한 제국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5. 그리고 20세기 초, 세 번째 설계자 쑨원이 등장합니다. 앞선 이들이 행정과 영토를 설계했다면, 쑨원은 '정치의 근본'을 새로 그렸습니다. 3,000년간 이어진 황제의 사슬을 끊고, 국가의 주인을 '황제'에서 '국민'으로 되돌려 놓는 것. 그것은 영토를 넓히는 전쟁보다 더 고독하고 치열한 인식의 투쟁이었습니다.
6. 그 투쟁의 흔적을 찾아 상하이 스완루 7번지로 향합니다. 붉은 벽돌의 고요한 저택, 쑨원이 생애 마지막 열정을 쏟았던 이 '실험실'의 창가에는 지금도 오후의 햇살이 길게 스며듭니다. 바깥세상은 군벌의 총성과 외세의 압박으로 신음했지만, 이 방 안의 낡은 타자기 위에서는 '중국의 국민은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교한 답안지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7. 흥미로운 점은 그의 호 '중산(中山)'이 오늘날 중국과 대만이라는 서로 다른 체제 위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이정표로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도시를 가든 심장부를 관통하는 '중산로'와 시민들이 쉬어가는 '중산공원'은, 정권은 유한할지라도 그가 설계한 공화의 가치만큼은 인민의 일상 속에 유전자처럼 새겨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8. 진시황의 진나라가 15년, 수문제의 수나라가 37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거대한 번영의 터를 닦았듯, 쑨원이 설계한 공화제 또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분열된 중국의 이념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접점이 되고 있습니다. 매년 백만 명의 대만인이 상하이의 쑨원 고거(옛집)를 찾는 이유는, 그곳이 이념을 초월한 '공화의 뿌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9. 다시 인천 공화춘의 붉은 간판 아래로 돌아옵니다. 3,000년의 긴 겨울을 깨웠던 '공화의 봄'은 이제 식당의 이름으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체제 속에 평범한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습니다. 국가란 더 이상 특정 가문의 소유가 아니라, 국민을 아끼고 경영하는 공동의 장이라는 그 당연한 진리는 사실 이토록 뜨거운 설계의 과정을 거쳐온 것입니다.
10. 여행자는 짜장면 한 그릇을 비우며, 길 위에서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공화'라는 이름의 주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3,000년 황제의 사슬은 진정으로 끊어졌는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사슬로 변모해 우리 곁을 배회하고 있는가.
'인천 차이나타운 '공화춘' 짜장면집의 비밀' 이야기를 동영상으로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