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의 마지막 아침, 시계는 왜 바꾸었나?

by kidongkim


상하이–윤봉길

윤봉길의 마지막 아침, 시계는 왜 바꾸었나?


1. 상하이는 늘 소란스러운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네온사인과 경적, 사람들의 빠른 걸음이 밤을 밀어 올리는 곳. 황푸강의 물결 위로는 오늘의 번영이 반짝이고, 여행자는 그 빛 속에서 잠시 안심합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이 언제나 평화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도시의 골목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들이 숨어 있습니다.


2. 저는 상하이의 로만구, 안탕로 56번지 앞에 섰을 때 도시가 조용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벽돌담과 낮은 처마, 오래된 대문. 관광지의 소음이 멀어지고, 그 자리에는 오직 기억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곳은 윤봉길의 마지막 아침이 머물렀던 장소였습니다.


3.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은 이 작은 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도시락 상자 속에 폭탄을 숨깁니다.


여기서 도시락은 단순한 밥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청년이 자신의 삶을 접어 넣은 결단의 상자였습니다.


4. 윤봉길은 김구와 마주 앉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말보다 무거운 침묵이 흐릅니다.


윤봉길이 조용히 말합니다.

“제 시계는 곧 멈출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시계는 계속 흘러가야 합니다.”


그들은 시계를 바꿉니다.

한 사람은 멈출 시간을,

다른 한 사람은 이어가야 할 시간을 손에 쥡니다.


5. 윤봉길이 들고 나간 것은 총이 아니었습니다. 물 한 병과 도시락 가방.

너무도 평범한 물건들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때로 가장 평범한 물건 속에 가장 비범한 의지를 숨겨 놓습니다.

한 병의 물이, 한 나라의 시간을 흔들 수 있을까요.


6. 그는 홍커우공원으로 향합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전승기념식이 열리던 한복판.


군악대의 음악과 축하의 환호 속에서 도시락 폭탄이 터집니다.

제국의 시간은 잠시 멎었고, 조선의 시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7. 그는 두 아들에게 편지를 남깁니다.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나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라.”


8. 그러나 윤봉길의 죽음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본제국은 그를 가나가와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게 한 뒤, 유골을 쓰레기장 통로에 버렸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모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종종 이렇게, 죽은 자의 존엄까지 지우려 합니다.


하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상하이 교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유골을 몰래 수습합니다.

13년의 세월 끝에, 그는 마침내 조국의 흙으로 돌아옵니다.


9. 서울 효창공원.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그리고 그 곁에 김구의 묘가 있습니다.


윤봉길의 시계는 멈췄지만

김구의 시계는 계속 흘렀습니다.

멈춘 시간이 다른 시간을 움직였습니다.


나는 효창공원의 바람 속을 걷습니다.

상하이의 회색 하늘과, 원창리 13호의 좁은 골목이 떠오릅니다.

시계를 교환하던 두 사람의 손, 그리고 한 병의 물이 다시 맑게 고입니다.


10. 다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한 나라의 시간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윤봉길의 신념은 멈춘 것이 아니라 한 병의 물처럼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여행자는 골목을 나서며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봅니다.

지금, 당신의 시계는 누구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습니까.


'윤봉길'의 이야기를 동영상으로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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