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소설가 라오서
인생은 왜 네 번째에서 무너지는가
1. 사람은 보통 세 번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강한 삶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어떤 인생은 네 번째에서 완전히 무너집니다.
앞선 세 번의 실패보다
마지막 한 번이 더 조용하고
더 깊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뜻하는 이름을 가졌지만
단 한 번도 행복하지 못했던 한 남자.
그의 삶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가
중국 칭다오의 한 골목에 있습니다.
2. 칭다오 해안에서 조금만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바닷소금 냄새와 커피 향이 함께 흐르는 거리가 나타납니다.
예쁜 카페들이 이어진 골목 끝에는
회색 벽돌집 한 채가 조용히 서 있습니다.
중국의 대문호
라오서가 실제로 살며 글을 쓰던 집, 라오서 옛집입니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소음이 갑자기 사라집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인력거 한 대가 놓여 있습니다.
바퀴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둥글게 만들어졌지만
이곳에서는 오래전부터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3. 1936년, 라오서는 이 고요한 마당에서 한 편의 소설을 집필합니다.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작
낙타샹즈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중국 사회의 현실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 소설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리고 1940년 미국에서 출간된 번역판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 도시의 조용한 마당에서 쓰인 이야기가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입니다.
4.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샹즈’입니다.
한자로 ‘祥子’.
상서롭고 길한 운명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이 이름과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성실하게 돈을 모아 인력거를 마련하지만
전쟁 속에서 군인들에게 빼앗깁니다.
다시 돈을 모아 일어서지만
부패한 권력 앞에서 또다시 모든 것을 잃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행한 인생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반어법이 됩니다.
5. 이 소설은 지금도 중국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샹즈의 인생을
‘삼기삼락(三起三落)’으로 설명합니다.
세 번 일어서고
세 번 넘어지는 인생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강조하는 교훈은 단순합니다.
“사람이 똑똑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국 세상에 속게 된다.”
그래서 학생들은
이 소설을 현실적인 교훈 이야기로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샹즈의 비극은
그 세 번의 실패에 있지 않습니다.
6. 한국에서는 성실한 사람을 흔히 ‘소’에 비유합니다.
소는 공동체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따뜻한 희생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샹즈는
‘낙타’로 불립니다.
소가 따뜻한 마구간으로 돌아온다면
낙타는 사막을 홀로 건너야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낙타샹즈》입니다.
샹즈의 인내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노동이 아니라
끝없는 고독 속에서 이어지는 인내였습니다.
7. 그러나 이 이야기의 진짜 비극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네 번째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샹즈는 자신처럼 외롭게 살아가던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둘은 거창한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그저 실패했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가능성마저
끝내 사라지고 맙니다.
그 순간
샹즈는 더 이상 일어설 이유를 잃습니다.
8. 인생은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함께 견뎌줄 사람이 있다면
그 실패는 그저 실패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샹즈에게는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네 번째에서 완전히 무너집니다.
9. 라오서 옛집 마당에 놓인 인력거를 다시 한 번 바라봅니다.
햇빛 아래 늘어진 바퀴 그림자가
오래된 시간처럼 바닥에 걸려 있습니다.
바퀴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둥글지만
인생은 때로 멈춰 서 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라오서의 집을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어쩌면
세 번의 성공과 실패를 지나
모든 것이 무너진
그 네 번째에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라오서의 '낙타상즈' 소설 이야기를 동영상으로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