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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Sep 13. 2021

이태리 북부 - 밀라노와 코모 호수 여행기

코로나 이전을 추억하며....

비행기 여행은 나를 항상 설레게 만든다. 비행은 말하자면 또 다른 자유를 준다. 그것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인류의 영원한 꿈이다. 폭음을 울리며 이륙하는 항공기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단조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그 이륙을 바라보며 온갖 공상에 빠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에게 있어서 비행은 기껏 상업용 여객기로 경험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설레는 비행이 되기 위해선 밖이 내다 보이는 창가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보이는가? 나는 구름 위를 날고 있다. 또 그 밑, 내리는 비에 촉촉이 젖은 대지가 어머니의 품처럼 자연과 인간을 품고 있는 것을....


보이는가? 이 무거운 쇳덩이를 간단히 공중에 뜨게 하는 엔진과 날개 주위를 흐르는 강력한 공기의 흐름... 일찍이 다니엘 베르누이가 발견해 낸 그리 복잡하지 않은 에너지의 원리가 보이는가?

밀라노로 향하는 A1 고속도로를 달리는 데 갑작스레 길가 작은 숲에 밝은 햇살이 비췄다. 구름 사이 작은 구멍을 통해 내리는 늦가을 오후의 햇살은 아직도 짙은 구름이 낀 어두운 저쪽 하늘을 캔버스 삼아 노란색 단풍을 두드러지게 그려내고 있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일어난 정말로 순식간의 아름다움이다.... 과연 아름다움은 순식간인가? 교통량이 많지 않은 일요일 오후의 고속도로는 오히려 고즈넉하기까지 하였다.


찍을 땐 몰랐는데 화면에 옮기고 보니 미술관에서 보았던 모네나 르느와르 등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강력한 역광으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모노톤, 그리고 물체의 경계가 다소 흐릿한 것이... 비교당하는 두 화가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탈리아 북부의 한 농(산?)촌 풍경이다. 들판 곳곳에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서 있고 산이나 언덕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무슨 종탑 같은 것이 서 있었다(아래 사진).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다. 停止(Stand Still)란 없다. 모든 것은 움직인다. 어떻게 시간을 붙잡아 매겠는가? 흐르는 풍경도 아름답다. 달리는 차에서 찍은 이 사진에는 흐르는 시간도 찍혀 있다.....


호텔에 들어가 보니 변기 옆에는 피곤에 지친 발을 씻는 洗足器(?)가 따로 있었다. "고거 참" 하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발을 씻고 같이 간 동료에게 칭찬을 했다. "이 호텔은 손님 배려를 독특하게 하는구나?" 그러자 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No, that's a bidet, an Italian bidet!!" 비데를 발명해 낸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쪽 팔리지만 신기했다. 일본 호텔에는 거의 100% 비데가 있는데 말하자면 그건 자동화된 현대식이고 실제 원조는 이태리란다. 역시 로마 후손들의 앞선 문명이여... 그런데 아직도 이런 구식의 비데를 고집하다니. 손을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수도꼭지에서 낙하하는 물을 그곳을 향해 쏠 수가 없지 않은가? 이렇듯 진보가 없는 전통은 무용지물 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밀라노 광장 - 칼을 빼어 든 채 밀라노 성당(MILAN DUOMO)을 바라보고 있는 VICTOR EMMANUEL 2세의 기마상이 이채롭다. 실제로 임마누엘 2세는 교황이 잡고 있던 정권을 빼앗아 가톨릭이 세상을 통치하던 시대의 종말을 가져온 인물이다. 그러나 영웅은 사라진 지 오래, 유럽에서 서너 번째 크다는 밀라노 성당은 밀라노의 상징이 된 채 아직도 관광객들의 찬탄을 받으며 이곳에 우뚝 서 있다. 1386부터 아직까지 짓고 있다는 저 교회는 여러 세월, 여러 시대를 거친 덕분에 각종 건축양식의  짬뽕이 되었으며 예술적 심미적 관점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나야 문외한이라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이 교회는 엄청 비싸게 지어진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밀라노 성당을 멀리서 보면 그 외벽이 얼룩덜룩해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외벽 전체를 위 사진과 같은 대리석 부조물로 빈틈없이 꾸며 놓았기 때문이다. 위의 조각은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는 아담과 이브의 에피소드로 짐작이 간다. 그밖에 바벨탑, 사자를 죽이는 삼손등 등의 이야기가 한이 없다... 그 비싼 대리석으로 말이다.... 예전에는 유럽의 큰 교회나 궁전을 보면 부러움의 탄성부터 지르곤 했는데 이젠 고생한 백성들 생각에 마음이 애처롭다. 그 들은 과연 믿던 대로 천국에 갔을까?  만일 내가 그때에 살았더라면 확률적으로 보아 착취당하던 입장이었을 게다. 아니 이러한 역사의 교훈으로 민주주의를 배워 나갔겠지?     


이태리 사람들은 숫자를 보고 옷을 입는다고 한다. 즉, 날씨가 추워져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 것이 아니라 달력에 있는 숫자가 11, 즉 11월이면 11월의 분위기에 맞는 복장을 하고 나선다는 것이다. 그 말은 사실처럼 들린다. 얇은 외투 하나로도 충분히 따뜻한 날씨에 모두들 두꺼운 외투 하며 목도리를 두르고 다닌다. 그렇지 않으면 관광객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아무리 어렵게 살아도 고급 외출복 하나쯤 있다고 하는 말이 이태리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밀라노 근교의 유명한 휴양지 코모. 관광객들이 유람선 선착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스위스 국경이 있고, 알프스 산맥이 있는데 그곳의 만년설이랑 빙하가 녹아 내려와 커다란 호수를 이루고 있다. 벨라지오까지 연결되는 뱃길을 타고 관광을 하려 했으나 시간 맞지 않아 포기했다. 혹시 아시는가? 라스베가스에도 Lake Como와 Bellagio가 있는데 그 원조가 이곳이라는 것을....


대신에 Funicular를 타고 오른편에 있는 봉우리로 올라갔다. 봉우리에 오르니 Como가 한눈에 들어온다. 11월 중순인데도 산봉우리에 불어오는 바람은 훈훈했고 오전 햇살은 호수의 안개를 힘겹게 그리고 서서히 걷어내고 있었다. 이곳은 밀라노와는 아주 다른 느낌을 준다. 여유롭고, 깨끗하고, 조용하며, 사람들은 왠지 기쁨에 들떠 있는 것 같다. 거꾸로 선 Y자 모양의 호수 주변에는 아름다운 저택과 예술품들이 줄지어 있다고 한다. 마돈나, 폴 매가트니, 죠지 쿨루니와 같은 부자들의 별장도 포함해서...

"후니쿨라"!!! - 경쾌한 이태리 노래도 있지 않은가? 이런 기계적 장치를 통해 기쁨을 갖는다는 이태리 노래...하기야 우리도 방아타령이라는 흥겨운 노래가 있다! 슬퍼하고 낙담하기보단 즐겨요!!!    


인간이 만든 건축물도 아름답지만 자연이 만든 작품도 아름답다. 봉우리 꼭대기에도 작은 마을이 있고 또... 그렇지! 성당이 있다. 작은 성당은 안팎이 아주 예쁘게 꾸며져 있어 그냥 여기 눌러앉아 조용히 살아도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


따듯한 색의 이탈리아 지붕이 온화한 지중해 기후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붉은 계통의 지붕 아래서 붉은 계통의 토마토 요리를 붉은색 포도주와 함께 먹으며 수세기를 살아왔겠지? 코모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어느 집 붉은색 기와지붕.

밀라노 중앙역 앞에 대규모의 오토바이 주차장.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오토바이가 등 뒤에도 주차되어 있고, 시내 도처에 이런 주차장이 산재해 있다. 잔뜩 차려입는 아가씨나 신사들이 이런 오토바이나 자전거에 올라타 거리를 누빈다. 좁은 도로, 비싼 연료 등을 감안해 봐도 옷 차림새와 교통수단이 서로 격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북미나 한국 같은데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지만 어쨌든 이곳은 이태리이다.


아하 그렇지 George Clooney가 이태리계였지? 오메가는 스위스제인데...George는 앞서 방문한 Como에도 별장이 있던데...여러모로 참 좋겠다. 비록 전문가들의 평은 박했지만 그가 주연한 영화 Descendant를 재미있게 보았다. 애들 키우며 늙어 가는 중년의 모습에 관심이 아주 컸기 때문이다.  


이거야 말로 눈요기감이다. 백설공주가 신던 유리구두도 이만은 못했을 것이다. 세익스피어가 말한 대로 사람은 미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는데, 그중에 으뜸인 사람은 아마도 이태리 사람들일 것이다.  


비싼 물건들, 시계, 옷, 가방, 액세서리 따위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거리. Window Shopping을 하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여유롭다. 그냥 유유자적 방관자적 입장을 견지하지 않는다면 비싼 가격에 일찌감치 주눅 들어 모처럼의 여행이 어디 즐겁겠는가? 오래된 건물과 최신식 유행의 상품들...


Fashion의 도시 밀라노를 달리는 Old Fashion한 Street Car -  이 차가 달리며 "땡땡" 울리는 종소리는 도시의 각종 소음과 시차로 몽롱해진 내 마음을 갑자기 깨워놓곤, "이젠 집으로 갈 시간이야" 하며 소리 지르는 것 같다. 돌연 내 마음 귀소본능에 사로잡히지만 곧 "아 나는 여행 중이야" 하고 속삭이며 성급한 귀소를 서툴게 외면한다.   


로마의 종착역을 향해 떠나는 밀라노발 로마행 야간 고속열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애처롭게 만들었던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마의 종착역 테르미니는 낭만적인 사랑과는 달리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로 들끓고 있는 역이다. 하지만 한 번쯤 야간열차를 타고 달려보고 싶은 충동은 여행 중에 발동한 작은 旅心이라!


밀라노를 이륙한 비행기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스위스 취리히로 향한다. 승무원은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는 날 보고 오늘 운이 참 좋다고 한다. 보통은 구름에 가려 있기 때문에 이렇듯 깨끗한 전경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눈 덮인 산봉우리 저 아래 어느 계속에선가 윌리암 텔의 말굽 소리랑 활시위 당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햇볕의 위력. 산맥을 좌우로 양지쪽과 음지쪽이 확연히 다르다. 양지쪽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 다니는 길이 구불구불 나있고, 그 길은 집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간 마을로 연결된다. 그 어느 마을 한 귀퉁이에 부모 잃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할아버지와 도란 거리며 굳건히 살아가는 모습도 있을게다. 언젠가 한 번쯤 와서 하이디가 재잘대는 소리, 산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등을 들으며 저 길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닐어 보고 싶다.

짧은 비행 끝에 비행기는 알프스의 윗자락 Zurich공항에 내려앉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단 본 이들의 밭이 얼마나 깨끗이 정돈되어 있는지 내 책상보다도 더 깔끔하다. 그들이 올려놓은 그들의 삶의 기준이 부러울 뿐이다.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나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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