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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후 Mar 11. 2021

불안의 강령술

호모루덴스

지금은 일제강점기나 군부독재시대가 아니지만, 5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금지된 세상이다. 촛불 시위로 이뤄낸 민주정부에서는 5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고 있다. 소위 팬데믹 사태가 만들어 낸 기이한 현상이다.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는 나, 어느 날부터 인가 룸메이트의 방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프락치가 아니고, 룸메이트의 사생활을 존중하지만 또한 준법시민이기도 하다. 며칠간 나는 그의 *게슈타포가 될 것인지 고민했다.


*게슈타포 : 나치 정권의 비밀경찰


다만 의문스러운 점은, 방 밖으로 나오면 보이는 현관에 나와 룸메이트의 신발만 보인다는 점이었다. (룸메이트는 발이 무척 크기에, 그의 신발은 내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나는 매일 밤 룸메이트와 대화를 나누는, 신발 없는 무리의 정체가 궁금하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귀가 울리면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네. 낮게 흥얼거리는 소리는 벽에서 나오는 것 같았어. 캘빈의 얼굴이 일그러졌던걸 보면 그도 같은 소리를 들었던 모양일세. 우리가 선 바닥이 떨리는 것이, 이 교회에 익숙해졌던 손님들이 이제 우리를 덮치려 하는 것 같았네, 그들만의 장소를 지키기 위해 말이야. 정상적인 시공간의 틀이 뒤틀리고 깨지는 것만 같았어. 유령으로 가득 찬 교회는 지옥의 영원한 차가운 불로 타오르는 것 같았네. 제임스 분을 직접 보는 것 같았어. 반듯이 누운 여인들에 둘러싸인 음산하고 불행했던 그 사람을’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 <예루살렘 롯> 중에서-


하지만 얼마 후, 룸메이트가 유령들과 불법모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나의 룸메이트는 단지 요즘 유행하는 어플, 클럽하우스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것 또한 불안의 강령술이 아닌가, 생각했다.


*강령술 : 영혼을 불러오는 의식



사실 나는 SNS의 메커니즘이 사회적 불안감으로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것은 사회적 연결망, 그것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소외된 사람이 된다. 동떨어졌다는 불안감이 SNS 사용자들을 그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나 또한 그런 이유로 SNS를 사용한다.


더군다나 현재의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무대가 결핍되어버린 존재들이다. 학교, 직장, 동아리 등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자신의 무언가를 뽐낼 곳을 상실해 버렸다. 그 무대의 상실을 대신하여 사람들은 제한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찾아다닌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존재 증명의 불안감이 지워지길 희망한다.


왜 클럽하우스일까? 지인들과의 화상채팅이나 (줌 화상회의) 낯선 사람들과의 마피아 게임 (어몽어스)을 지나 가상 사회의 장은 계속해서 새로운 무대로 이전해왔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나에게는 두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첫 번째, 낯선 사람들과의 음성채팅 기반 서비스. 사람들은 누구나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 또한 부담스러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혹 알고 있던 사람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더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얼굴을 내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간대의 어떤 깊은 대화에 참여하는 것, 그것은 매력적인 아이러니다.


두 번째는 클럽하우스의 초대권. SNS의 메커니즘에서 이 초대권이라는 개념은 꽤 독특하다. 지금까지도 비공계 계정과 팔로우등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에 대해 구분하는 시스템은 존재해 왔다. 하지만 이 초대권이라는 이름의 가상의 종잇장은, 사생활 보호의 개념을 벗어나 사람들 내면의 특권의식을 자극한다.


어린 시절, 같은 반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길 고대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초대를 받는 것뿐만이 아니다. 누가 초대를 받지 못하는가, 그것이 이 초대의 쾌락을 강화시킨다. 특권의식, 그것은 초대받지 못할 것 같은, 무리에서 소외될 거라는 불안감을 가장 분명하게 선을 그어 해소해주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클럽하우스가 소위, 핫해지자 초대권을 구하기 위해 가상의 마켓을 뒤지기도 한다. 소외의 불안에서 생존하기 위한 넷상의 스캐빈저가 되어버린 것이다.


*스캐빈저 : 생물의 사체 따위를 먹이로 하는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나는 문득 이 불안의 소용돌이가 언제쯤이면 끝날 것인가 궁금해졌다. 돌이켜보면 SNS뿐만 아니라 사회의 많은 것들이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한 기능으로써 존재한다. 나는 매일 밤 룸메이트의 불안의 강령술을 엿들으며, 그의 불안을, 또한 나의 불안을 곱씹는다.


언제쯤 나의 룸메이트는 불안감을 잊기 위한 가상의 강령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언제쯤 나는 해시태그를 하지 않은 게시물의 좋아요 개수를 온전히 신경 쓰지 않게 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가 종식되길 바라는 것처럼, 나는 이 불안의 사회가 종식되길 매일 밤 바라본다.


글쓴이: 호모루덴스

소개: 낭만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맛있게는 해줍니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가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월/수/금]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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