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K
-시간에 갇혀버린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prologue)
최근 일을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실 일이 너무 바빠서 하루가 정신이 없기보다는 어떤 일정한 시간의 흐름에 들어가 바빠진 느낌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나만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왔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는 정해진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밥을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종의 나만의 미니월드다.
반면, 지금은 어떤 정해진 시간의 흐름이 있다. 일어나서 반드시 합류(출근) 해야 하는 시간이 있고, 밥을 먹어야만 하는 고정된 시간이 있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간(때로는 정해지지 않는)이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 배우는 업무도, 처음 만나는 사람도 아닌 바로 이 시간의 흐름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하루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가는 나날이 계속된다.
어느 안개 낀 금요일 아침, 나는 출근을 위해 버스를 탔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자리에 앉아 부족한 잠을 메우고 싶어서 억지로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짧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눈을 떴을 때, 버스는 고속도로를 지나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버스의 특징 중 하나는 모두 같은 방향을 보게 한다는 점이다. 버스는 지하철과는 다르게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특정한 시간에 버스를 타고 있다는 것은 버스 안에 있는 모두가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버스 안에 있는 이 사람들은 언젠가 한 번씩 만나봤던 얼굴일지도 모른다. 특정한 버스 안에 있는 이 사람들은 계속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하기 때문이다.
문득 갑자기 버스가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우리를 원래 목적지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안내해주던가. 그런데 버스가 심하게 덜컹거리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 나는 불안함과 묘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몇몇은 버스 기사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다.
기사는 문을 열어줬다. 하나둘씩 버스에서 내렸을 때, 바깥은 짙은 회색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버스와 차는 어쩐지 모두 멈춰서 있었다. 우리는 조금씩 안개를 헤쳐 나갔고, 안개 너머로 한 무리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희미했던 그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눈을 떴다. 하차벨이 울리고 버스는 서울에 도착했다.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군’
사람들이 우르르 줄을 서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나도 낑낑거리며 가방을 메고 대열에 합류했다. 또 같은 하루가 시작됐다.
p.s 최근 모두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해진 연재 날짜에 글을 올리지 못해도 어떻게든 글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종종 글이 올라오지 않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