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루덴스
8월이 되었다. 매년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찾아온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오래된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다. ‘영화 친구’라는 이름의 대여점이었는데, 당시에는 극장을 가기보다 그곳에서 비디오를 빌려보는 일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 주말마다 가족들이 다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었다. ‘인디아나 존스’ ‘백투 더 퓨처’ 같은 시리즈물 영화나 성룡, 짐 캐리의 영화들. 주로 대중적인 영화를 빌려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꾸준히 많은 선택을 받았던 건 ‘로빈 윌리엄스’의 영화들이었다.
‘미세스 다웃 파이어’ ‘패치 아담스’ ‘바이센테니얼 맨’ ‘쥬만지’ 같은 영화들은 부모님의 검열 기준에 적합한 영화들이었다. 지금에서야 보면 그가 밝고 명랑한 영화만 출연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 알려진 그의 영화들이 대부분 대중적인 영화들이었기 때문에, 몇 번의 관람 이후 통칭 ‘로빈 윌리엄스’ 영화는 형과 내가 알아서 빌려와도 되는 프리패스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로빈 윌리엄스’를 ‘죽은 시인의 사회’나 ‘굿 윌 헌팅’ 같은 영화들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다만 좀 더 가볍고 단순한 모습으로 기억한다. 자주 마주치던 익살맞은 옆집 아저씨나, 재미있는 학교 선생님처럼. 나중에서야 그의 다른 모습을 담은 영화들도 보게 되었지만, 나에게 그는 언제나처럼 그런 이미지로 기억되어 있었다.
그가 죽었다는 것, 그것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건 내가 학교에 들어가 영화를 배우기 시작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이래저래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하고, 휴가를 나왔던 날로 기억한다. 휴가를 나왔으니 뉴스 같은 건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사망 소식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듣게 된 이야기였다. 나는 오래전, 허물없이 좋아했던 선생님의 소식을 듣는 기분이었다. 슬픈 놀라움이었고, 갑자기 문득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으레 그렇듯, 배움이 짧으면 편협 해지기 마련이다. 영화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도 그러했다. 무엇이든 뭔가 더 예술적이어야 할 것 같고, 깊이가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가벼운 영화, 속칭 대중영화, 상업영화를 무시하는 버릇도 생겼다. 술자리에서 길고 어려운 감독들의 이름이나,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영화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더 매니악하게 갈수록 더 영화쟁이가 되는 기분이 들었던 걸까. 그때에 나는 ‘로빈 윌리엄스’의 영화 같은 건 말하지 않았다.
‘영화는 그래도 된다는 것’ 오랜 시간이 지나고, 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영화들을 만나며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적, 순진한 관객으로 처음 마주했던 영화들이나, 같이 울고 웃게 만들었던 ‘로빈 윌리엄스’의 그리운 얼굴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그가 다시 그리워진다. 영화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시절이 나에게는 ‘로빈 윌리엄스’의 다정한 얼굴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그의 영화 속 인물들처럼, 그는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영화 속의 인물들처럼. 그에게는 다양한 모습이 공존했다. 전쟁을 반대하면서도, 군인들을 위한 위문 공연에 열심인 다층적인 다정함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를 웃게 만드는 코미디언이면서 스스로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료를 받기도 했으며, ‘젤다의 전설’이라는 게임을 좋아해 딸의 이름을 ‘젤다’로 짓기도 했다.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너무 살폈기 때문일까. 그는 우울증과, 파킨슨병에 대한 고통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가장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남겼던 사람이 자신의 결말을 그렇게 선택한 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처럼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아직 결말이 찾아오지 않은 나로서는, 매년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 때마다 그를 그리워하며 기억할 뿐이다.
미국의 유명한 TV쇼 진행자인 지미 팰런은 오랜 선배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가장 유명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사를 차용했다.
“O CAPTAIN! MY CAPTAIN! You will be missed.”
글쓴이: 호모루덴스
소개: 낭만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맛있게는 해줍니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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