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선
지안 어머님께.
안녕하세요. 직접 뵙고 얘기를 나누는 게 예의겠지만, 이렇게 편지를 남긴 걸 이해해주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안 어머님이 중고 장터에 올리신 베이비 시트를 구매했던 사람입니다.
저희는 2년 차 신혼부부입니다. 전 이제 임신 4개월 차가 됐습니다. 저번 달부터 아이를 위한 물건을 둘러보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그때쯤 저는 어머님이 중고 장터에 올리신 베이비 시트를 판다는 그 글을 보게 됐습니다. 전 새것처럼 깔끔한 그 물건을 보고 조금 이르지만 사두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구매를 결정하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물건을 샀다고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제게 올린 글의 소개 글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베이비 시트 팝니다. 한 번도 쓴 적 없습니다.’
처음엔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되묻자, 그는 중고 장터인데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을 올린 게 이상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건 분명 물건에 하자가 있는 거라고, 자신이 중고 거래를 해봤을 때 이런 물건들은 사진으론 볼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하더군요. 남편의 말을 듣고 나니 저 역시 분명 깨끗하고 문제가 없어 보이는 물건인데 왜 여기에 올렸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전 이미 물건 값을 치른 뒤였기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 생각하고 나니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제가 어머님께 메시지를 보낸 건 이런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있어 직거래는 할 수 없다는 말 역시 제 의심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종종 봐왔던 중고 거래 사기를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물건과 관련된 제 질문에 잘 대답해주시던 어머님은 언젠가부터 메시지를 받지 않으셨죠. 이미 물건 값은 치렀고, 메시지에 답은 없으시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물건을 기다리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초조해지더군요.
결국 물건이 도착해야 할 날이 지나고, 전 그저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그렇잖아요. 남에게 사기를 당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차마 이 편지에 적지 못할 말들을 메시지로 보냈죠. 모진 말을 내뱉고 나니 잠시나마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이내 저는 이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집을 나서다 물건이 도착한 걸 발견했습니다. 전 처음엔 어떤 물건인지 알지 못한 채, 포장을 뜯었습니다. 박스를 열어보니 베이비 시트가 들어있었습니다. 전 그때서야 이 일을 기억했습니다. 그렇게 물건을 받고 난 뒤, 중고 거래 사이트에 어머님이 남기신 메시지를 보게 된 겁니다.
처음에 그 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이제 출산을 앞둔 제게 유산을 경험하고 아이의 장례를 치렀다는 어머님의 말씀은 처음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없어 물건 배송이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과 아이를 잘 키우길 바란다는 말을 보곤 저도 모르게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습니다. 아마 이 베이비 시트를 보고 있으면 떠난 아이 생각이 나셨겠죠. 전 차마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메시지에 답을 해야 할지, 통화를 한번 해야 할지 생각했지만, 저의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베이비 시트를 포장한 박스 송장에 적힌 어머님 댁 주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전 무작정 그 송장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지금, 전 어머님 댁 앞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무작정 찾아왔지만 차마 어머님 얼굴을 뵙지 못하겠더군요. 작은 오해였지만, 제가 메시지에 쏟아낸 말들이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남깁니다. 어떤 말이 어머님께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도무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때로 세상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찾아오곤 합니다. 말로 할 수 없어 이렇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전 어떠한 위로의 말도 쓰지 못했네요.
아이 이름이 베이비 시트 안에 함께 들어가 있던 손수건에 적혀 있었습니다. 지안. 참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남편과 저희 아이 이름을 지안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허락해주신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하늘에 있는 지안이가 이름처럼 편히 쉬길 바랍니다. 손수건은 이 편지와 함께 두고 갑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끝 -
작가의 말: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 E. Hemingway
아기 신발 팝니다. 사용한 적 없습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작가 헤밍웨이가 짧은 문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내기를 했을 때 쓴 여섯 단어 이야기에 영감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설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헤밍웨이의 이 여섯 단어 이야기가 생각나곤 합니다.
추후의 매거진 텀블벅 펀딩이 진행 중입니다.
응원해주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글쓴이: 순환선
소개: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