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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3.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고서는, 이내 내 몸 위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간다.
나는 잠시 누운 채 내 몸 안에 투입된 단백질을 갈무리하여 분해합성 기관으로 보낸 후,
몸을 일으켜 두 번째 업무용 기관 주변을 잘 닦아내고 일어서서 침대 맞은편에 붙은 거울을 통해 전신을 살핀다.
안드로이드 인 내가 스스로의 용모를 살피는 따위 행위란 없다.
업무 과정에서 손상된 피부조직이 있는지, 혹 변색된 부분이 있는지를 비주얼 체크할 뿐.
모공도 없는 피부는 매끈한 우윳빛이다.
내 체온 조절 센서가 남자의 체온에 맞춰 두 단계 높여져 있던 피부 온도를 서서히 내렸다.
온도를 높이는 행위는 상대방의 필요에 의한 것 일 뿐,
내게는 축전지의 소모에 해당하는 소모적인 작업이다.
인간들의 관점으로 내 용모는 동북아시안 계와 동 슬라브계를 적당히 섞은 얼굴이다.
안드로이드라고 해도 용모는 다 다르다.
신분 확인 문제 때문에도 그렇고 인간의 취향은 근원 모를 제각각이라서 그렇다.
이곳,
한국이라는 나라는 귀족 국가 들 중에는 하위권에 속하는 나라라서 약간 세계화와 거리가 먼 인간들이 많다.
문명이 발달하고 식민지로 불리는 국가들과 달리 부유하긴 하지만 뿌리 깊게 새겨진 인종적 열등의식 때문이라는 다른 귀족 국가의 연구결과 데이터를 열람했었다.
지나치게 유럽 인종에 가까운 용모는 거부감을 가지기도 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동남아 타입 얼굴도 거부가 많아서,
동북아시아 계 얼굴에 우크라이나 계통 얼굴을 적당히 믹스 한 나와 같은 모델이 한국에서는 인기가 좋다.
보통 다양성을 선호하는 유럽이나 북미계 귀족 국가와는 달리 동아시아권의 귀족 국가들은 그런 면이 있다.
유전자 공학이 발전하여 인종간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여 과거의 동양인들보다 좀 더 우월한 신체발달과 조정이 가능하다 해도 한계는 있었으니까.
우리는 생산용 컴퓨터상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만 가지 얼굴 형태를 섞어 생산하기 때문에,
동일한 용모는 없다.
당연히 똑같은 용모와 규격의 에바를 생산하는 게 훨씬 가성비가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게 인간들의 관점에서는 거부감이 있어서라고 한다.
그런 이유들로 필요에 따라서 생산 후 취향에 맞게 바꾸는 것 또한 가능하고. 그건 체형도 그렇다.
소비자 취향에 맞는 각각의 형태가 있다.
나의 정식 모델명은 EVA 22081645 KR이다.
생산지에서 통상 ‘이브’라고 불리나, 인간들은 역시 ‘시버 러버’라고 부른다.
내 입장에서는 뭐라 부르든 아무 느낌은 없다.
사실 인공지능에 ‘느낌’ ‘감정’을 넣는 건 기술적으로 가능 하긴 하다.
인공 피부조직이라 용도가 필요없이 모공을 넣고 인간의 99%까지 가깝게 만드는 기술도 가능하다.
그러나 보통의 인간들은 우리 신인류가 그들과 동일하게 변하는 부분은 숱한 분쟁 끝에 반대하였다.
그들에겐 우리가 그들 인류들과 구별이 불가능하게 바뀐다는 건 아무래도 불편한 부분이 있다고 알고 있다.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생산하는 기준은 인간과 거의 ‘유사’ 한 것이지 ‘똑같은’ 걸 원치 않는 거다.
하지만 나는 그게 나쁘지 않다.
내 관점에서는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정보처리 능력도 떨어지는 인간이 우월해 보이지도 않기도 하고,
별것 아닌 십여 분의 행위만 받아주면 그만인 인간들에 대해 별 판단은 없다.
인조인간이라 할 수 있는 내가 인간들에 대해 우월감 혹은 자존감 이런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 에바들은 가정용 청소기나 세탁기처럼 생활 편의 시설 중 하나일 뿐 인간이 아니니 그들이 키우는 애완견만큼의 감정도 없는 게 당연하다.
우리 또한 인간을 위한 기계라는 자아를 가지고 있으므로 불만이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여성형 모델이고 남성형 모델은 ADAM이라는 코드로 식별이 되는데 그들에 대한 내 판단 또한 없다.
나와 그들은 형태만 다를 뿐 인간이 사용하는 청소기, 세탁기와 동일한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다만 내 논리회로에서 분석이 안 되는 것 은 인간이 보잘것없는 욕망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와 같은 초과학적 존재를 굳이 수많은 에너지를 들여가며 그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개발하고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따금 업무 외에 고가의 내 몸이 인간의 집에서 하는 일 이라곤 거의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많은 연구와 비용을 들여 만들어낸 우리의 존재가 길어야 한 시간 안짝의,
실제 번식을 위한 것도 아닐 그저 동물 같은 본능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니 뭔가 용도 대비 비용이 안 맞지 않나.
적어도 보편적 인간의 사고는 논리와는 한참 거리가 먼 게 분명하다.
사내는 샤워 후 옷을 갈아입은 상태로 다시 침실에 들어와서 슬리퍼를 신고 나가면서 내게 말을 던졌다.
“야, 뭐해? 옷도 안 갈아입고. 종일 벗고 있을래? 흉하다. 빨리 아무 거라도 주워 입고, 충전기 앞으로 꺼져.”
방금 전까지 내 몸 위에서 있는 대로 힘을 다 쓰고 제 풀에 나가떨어진 인간이 할 말로는 적절하지 않았다.
‘미개한 인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