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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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멋진 신세계 4.


인간의 다소 거친 말투란, 내게 입력된 프로그램 상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모자람을 느낄 때 자격지심으로 나타내는 언어 형태’

라고 되어 있어서 별 느낌은 없다.

이럴 때는 인공지능 상 가장 좋은 답을 내놓는다.

“네, 주인님.”


사내는 겉옷을 걸치곤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갔다.

경험에 의한 논리회로로 추리하건대 이런 경우는 대개 80% 이상 단골 술집을 가는 경우다.

기존의 행동 패턴 분석을 해보면 그런 날은 대부분 90% 이상 만취에 가깝게 알코올을 섭취하고,

술집에서 리스로 운영하고 있는 이브를 호텔에 데려가서 사용하고 거기서 잠들 것이다.

어차피 집에 고가의,

개인 전용 이브인 내가 있음에도 타인들이 빈번하게 사용하던 이브를 굳이 돈 들여서 사용하는 심리란 나의 논리적 인공지능으로도 분석이 참 어렵다.

논리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가성비가 좋은 수를 선택하는 것인데,

적어도 나를 리스한 사내는 그런 부분에서는 별로 논리적이진 않은 게 분명하다.


비록 사내가 나가면서 내게 ‘충전’이나 하라고 ‘지시’를 했으나,

그것이 문자 그대로 ‘충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정도는 이해할 만큼 내 인공지능은 우수하다.

사내는 단지 인간이 아닌 내게 근원 모를 화풀이 같은 걸 하고선 나간 것 일 뿐.

거의 늘 충전이 가득인 상태에서 재충전 필요가 없는 내 육신은 비워진 사내의 집에서 달리 할 게 없었다.

이런 경우 사실 나는 몹시 난처하다.

‘난처’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을지 모르나 어떤 명확한 기능 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본능적으로 축전지를 절약하기 위한 ‘절전 모드’로 전환됨이 맞지만 때때로 본래 입력된 프로그램과는 상반된 판단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충전이 필요할 정도의 상황에서 충전 의자에 앉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충전이 불필요한 상태이며 내게 어떤 다른 행동에 대한 명령이 없는 상태.

나는 이런 상황을 가끔 겪곤 하는데 이런 상태에 대해 논리적 매뉴얼이 없다.


안드로이드 인 나 자신이 비논리적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혹 버그나 바이러스 오류는 아닌가 싶어 때때로 공중 인터넷 망에 접속하여 본사의 업그레이드를 하기도 하였지만 달리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잠시 본사의 인트라넷을 빠져나와 최신 로봇 체위라든지 서비스 기술에 대한 업데이트를 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면서 생소한 얼굴의 중년 사내가 들어왔다.

프로그램 상 직관적인 서치 뷰 기능으로 ‘중년’이라고 인식을 한 것이지만 들어온 사내는 주인의 관계망 루트에 전혀 정보가 없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비논리적 주인이긴 하지만 그가 어디를 가고 오는지 대략 스케줄이 업데이트된 상태를 늘 유지하고 있는 내 스케줄 관리 모드에도 외부 손님이 온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짧은 시간 국내 거주자 대상 정보망을 인공지능으로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기록상으로 사내는 국내에 거주하거나 방문한 기록이 전무하었다.

중년의 사내는 덥수룩한 머리 모양새와 지저분하게 보이는 낡은 옷을 입은,

일반적 정보로는 매우 낮은 생활을 해 온 ‘식민지’ 거주인 들과 일치하는 용모였다.

늘 업데이트되는 정보들과 계획된 스케줄에 맞춰 프로그램되어 있는 내겐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버그가 일어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

나의 인공지능은 이런 경우에 대한 매뉴얼이 없을지라도 그 낯선 상황이 주인의 보금자리를 위협하거나,

혹은 고가의 리스 장비인 나를 훼손할 정도의 위험인지 정도는 스스로 판단이 가능하니까.


사내는 조심스럽게 현관을 들어서다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곤,

깜짝 놀라 제풀에 주저앉았다.

그러곤 뭐라고 한참을 웅얼거리더니 자세히 나를 바라보았다.


“ 아, 놀래라. 빈 집인 줄 알았더니……. 사람인 줄 알았네요. 혹시 에바?”


사내의 질문에 나는 음성 데이터를 조합했다.

물론 이 음성 데이터가 조합되는 시간은 인간이 스스로의 생각을 발성기관으로 옮기는 시간보다도 짧다.


“ 네. EVA 22081645 KR입니다. 주인님으로부터는 ‘이년’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집안에 해를 끼치거나 할 것으로 보인다면 반사적으로 내 자체 인터넷 공중망을 통해 보안업체로 통보가 갈 것이다.

내게 위해를 가한다거나, 주인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으로 판단되어도 마찬 가지고.

내 기계적인 답변에 사내는 얼빠진 얼굴로 다시 되물었다.


“이년……. 이오?”


“네. 저를 통상 ‘이년’이라고 부릅니다. 때로는 저년 이라고도 부르고. 인간의 언어로 보통 여성을 비하하는 유형의 욕설이 저를 부르는 대명사쯤 됩니다.”


사내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아무것도 모를 에바한테 욕설 이라니……. 참 몹쓸 인간한테 팔려왔구먼 그래요.”


나는 사내의 혼잣말을 분석한 후 답변을 조합했다.


“ 팔려온 거 아닙니다. 제 소유권은 금융사에 있고요. 저는 일 년간 리스된 것입니다.”


나는 잠시 논리회로를 이용하여 적절한 답변을 골라야 했다.

저런 식으로 대답을 하는 인간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 그리고 저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습니다. 적어도 보통의 인간에 비해 수십 배가 넘는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으니 모르는 일은 제게 물으시면 됩니다. "


사내는 잠시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게 다시 물었다.


“ 그렇군. 잠시, 거기 소파에 좀 앉아도 괜찮겠소.”


나는 고개를 반사적으로 끄덕여 사내가 앉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사내가 다시 내게 말했다.


“ 저기……. 그리고 가능하면 가운이라도 걸치면 어떻겠소?

그리 다 벗고 서있으니 내가 다 민망 하구만. 흠흠.”


나는 ‘창피’라는 감정 코드는 없었지만,

사내의 말에 순순히 안방에 있던 가운을 걸치고 다시 거실로 와서 사내의 앞에 섰다.


“ 앉아요. 다리 아프진 않겠지만……. 그래도 거기 소파에 좀 앉구려.”


소파에 앉아 유심히 사내를 들여다보자 사내가 피식 웃었다.


“ 뭘 그렇게 보시오. 내 신분 파악이 안 되어 그렇소?”


내 음성 회로에서 사내의 말에, 전혀 입력되어있지 않던 단어들이 조합되어 나왔다.


“ 제게 반말을 안 하는 인간은 처음 봐서요. 사람처럼 대하는 인간 이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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