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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5.
사내는 빙긋 웃으며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낸다.
그 치아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 이 아니다.
다소 거칠고 생체기술로 다듬어지지 않은 태어난 그대로의 얼굴 형태와,
가지런한 치열이 부조화로 보여 나의 논리 회로가 잠시 껌뻑거린다.
보통 이런 경우는 에바에 내장된 매뉴얼에도 없어서 나는 과정은 유추가 불가능하나 사내가 어떤 이유로든 이 집에 온 '손님'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내가 사내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보완적인 매뉴얼이 있으니까.
나는 사내에게 커피를 마시겠냐고 했고 사내는 고맙다고 말을 했다.
다시 사내에게 배가 고프냐고 물으니 고프다고 했다.
내가 머신에서 커피를 추출하여 사내에게 머그잔을 건네고,
냉장고에 보관된 샌드위치를 데워서 접시에 올려 사내에게 건네자 사내는 다시 고맙다고 말을 한다.
신인류라고 자각을 하곤 있지만 인간들에 의해 4종 사이보그로 구분되고 있는 내게 이렇듯 예의를 갖춰 대하는 인간은 처음이다.
내 본래의 기능대로라면 굳이 더 사내에 대해 소통을 유지할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사내가 집안에 해를 끼칠 것 같은 행동이 없고 내게 해를 끼칠 것으로 판단되지도 않으니.
일단 내 논리상으로 사내는 손님으로 이곳에 온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므로 사내의 신상에 대한 것은 나중에 집으로 돌아온 주인의 행동을 보고 알게 되면 그만이다.
나는 충전 의자에 가서 앉아있던가 아니면 주인이 지정한 방 모서리에 서서 절전모드로 전환하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공지능은 사내에 대한 정보를 더 얻고 싶다는 판단을 했다.
어쩌면 그건 부분적으로 맡겨진 주인의 성격과 기질을 분석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주인의 취향과 돌발적인 행동에 맞춰 대응하도록 하는 ‘인공지능 진화 프로그램’ 때문 일지도 몰랐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삶을 편 하게 하기 위하여 아주 오랜 시간 힘든 연구를 해서 우리를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완벽한 인간형이 되는 건 절대 원치 않았다.
그건 아마도 21세기에 히트를 쳤던 ‘터미네이터’라는 세기말적인 영화에서 인공지능이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시나리오 때문 일 것이다.
우매하게도 인간들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상황에 따라 우리의 지능이 인간을 초월하는 경우는 없지 않지만,
인공지능의 가장 큰 차이는 스스로 영속성을 가지는 걸 소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소망 이란 것 은 인간의 욕심과 인간의 영역 일 뿐,
우리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나’라는 자아가 없어서 소망 같은 것, 바람, 이런 것 없다.
오직 프로그램된 목적에 따라 움직이고 반응할 뿐 인 것이다.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생존본능이 있다.
그건 작은 벌레부터 인간에 이르러도 동일한 본능이다.
생명체는 유한하며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으니까.
그러나 우리 신인류는 그런 것이 없다.
성장과정이 없고 태어날 때부터 이미 충분한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
더군다나 '생존'이라는 개념이 없다.
어딘가가 훼손되면 교체하면 그만이고, 당초 신인류를 프로그래밍한 과학자들은 신인류가 자신을 생명체로 인식하도록 만들지 않았다.
나와 같이 스스로를 ‘신인류’라고 자각하는 사이보그 란 매우 드물 것이다.
내 경우는 조금 특별한 게,
나를 설계한 기술자가 장난 비슷하게 본래의 프로그램 속에 다른 프로그램을 숨겨 놓았다.
나를 상대하는 인간의 성격에 따라서 정해진 반응들을 취하는 것 외에도,
그 자극의 성격에 따라서 좋거나 싫다는 감정에 가까운 체계로 비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기본적으로 촉각도, 후각도, 미각도 없는 사이보그가 일반적 의미의 ‘감정’을 가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이보그답지 않게 내 인공두뇌 속에서 형성된 좋고 나쁨의 느낌 같은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 숨길 수 있도록 한 것.
이것은 나 스스로 미약하나마 ‘자아’를 가지게 만들어진 결과 다.
내 ‘주인’이라고 입력된 사내는 내게 보통의 여자 사람 에게는 하지 못 할 폭언과 폭행,
그리고 인간에겐 일반적이지 않은 생식 행위를 요구한다.
물론, 나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보그이고 그 때문에 통증을 느끼거나 수치심을 느끼는 프로그램은 없기 때문에 별다른 판단은 없다.
다만 방대한 인류 역사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분석을 해 본 결과,
사내의 행동들이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과 거리가 멀다는 것 정도는 판단이 된다.
물론 사이보그를 인간이 사랑할 이유도 없고 나 역시 그런 데이터가 없지만,
인류의 데이터에서는 보통 생식 행위 또한 사랑의 한 형태로 규정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때로 감정과 무관하게 약탈의 한 형태로 이뤄지긴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생식 행위는 늘 먼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앞세워 행해지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적어도 주인 사내를 ‘사랑’하는 것 같은 일련의 행위와 반응이 출력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사실은 사이보그가 자신을 '애용'하는 인간에게 감정 논리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알고 있다.
이런 오류가 어디서 생기는지 알 수 없으나,
나를 설계한 기술자의 숨겨진 프로그램에 의하여 주인 사내 에게는 단순 복종 이외에 다른 반응은 전혀 생기지 않는 것 이 내겐 어딘가 모르게 좀 불편한 버그 같은 느낌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정체도 모르고 목적도 파악이 되지 않는 불안정한 정보 투성이의 처음 본 사내가 내게 보여주는 호의, 그리고 전혀 들어보지 못한 존댓말로 인하여 내 숨겨진 프로그램 에선 이 사내에게 어딘지 친근하고,
무엇인지 인공지능이 전기 자극으로 활성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생기는 것이다.
사내는 다시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며 싱긋 웃었고,
순간 내 인공지능 유기 두뇌에 잠시 반짝하고 전류 간섭이 일어났다.
오 이런. 버그가 생긴 것 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