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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6.
사이보그 답지 않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본 사내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사내는 내 궁금증.
정확하게는 ‘데이터 부족’에 의한 혼란으로 짐작되었는지 내게 간단하게 자신의 신상을 털어놓았다.
자신은 원래 한국에서 태어났었다.
어린 시절 식민지에 직장을 둔 부친을 따라 그곳에서 자랐으며 교육받았다.
과거 식민지에서 일어났던 폭동이 있었는데 그 사고로 양친을 다 잃게 되었으며,
당시 한국대사관도 폭도들의 공격을 받아 불타오르고 폭동이 진압되는 기간이 꽤 길었다.
- 이 역사는 내게도 있는 데이터이니 신빙성이 있다. -
폭동의 현장에서 쓰러진 자신을 어떤 폭도 중의 여자가 구조하여 집에 데려고 갔다.
상황이 상황이라 폭동이 진정될 때까지 사내는 여자의 집에 숨어 지냈는데 나중에 상황이 종료되었다 해도,
사내를 한국대사관에 데려갔다가는 폭도로 몰릴 상황이 너무 뻔해서 그냥 입양해서 키우는 것으로 했다.
그 이후 양부모의 극진한 애정으로 인하여 재외 한국학교를 다닐 수 있었으나,
국적이 식민지인의 양자인 관계로 차별도 많이 받고 귀족 국가 국민으로서의 권리 나 처우를 전혀 못 받고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성장 후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모국에 오고 싶어서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대사관을 통해 권리회복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오래전 데이터라서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하여 법적 투쟁을 벌이다가 요주의 인물로 낙인이 찍혔다고 한다.
그래도 모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결국 밀입국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모국에 돌아오면 어떻게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러나 부산항에서 밀입국 단속에 걸려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치게 되었는데 일행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자신은 기억이 남아 있던 부산의 주택단지 쪽으로 도망쳐서 이 집에 우연하게 이르렀고,
마침 주인이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도어가 보안 잠금이 안된 것을 보고 다짜고짜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배도 고프고, 며칠간 배 안에서 찌든 냄새나는 몸부터 씻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때마침 주택의 보안 시스템이 가동되기 전이라 가능한 상황이었겠지만.
사내가 자신의 신상을 말하는 동안 나의 인공지능은 식민지의 국민 데이터에 접속하여 일치하는 신분증 사진을 검색하였고, 사내의 식민지 이름이 Ganapatih Maulana이며 10살 무렵 입양되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사내의 말에 거짓 정보는 없었다.
그 이름의 뜻은 ‘멋진 남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정도의 의미라는 것 도 알았다.
내겐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때 쓰는 직감이나 첫인상 같은 것 은 없다.
내 인공두뇌는 그 사람의 데이터베이스와 현재의 상태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판단하니까.
그의 인도네시아 내 범죄기록은 깨끗하였으며 고등교육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최근 며칠 사이에 식민지 밀입국 선박이 부산항에서 적발된 사실 또한 기록에 있었고.
사내가 제공한 데이터에 거짓은 없었다.
그리고 내 판단 회로의 최종 평가결과로 사내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보통의 인간들이 사람을 판단할 때 동원되는 선입견이나 후각 정보가 내게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내는 내게 인간의 범주로 볼 때 무례하지도 않았고, 최소한 나를 인간처럼 대우를 해 주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기도 하고, 신인류인 내가 인간처럼 대우받는 것에 호감을 느낀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모든 결과가, 사내의 행동과 언어 패턴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위해를 가할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니까.
사이보그인 나를 깨닫고도 이토록 정중한 인간이 주인 사내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으로 판단이 되고,
그렇지만 주인 사내는 오히려 폭력적인 사람에 속하니 주인이 미지의 사내에게 위협적일 것이라는 결론이 논리적이다.
나는 사내에게 몸을 씻을 수 있는 욕실을 알려 주었고, 사내가 갈아입을 만한 크기의 옷을 찾아내었다.
내 시각 기능은 인간보다 탁월하기 때문에 그의 신체 규격이 주인의 크기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주인이 입지 않는 옷가지 몇 개를 골라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사내가 두고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빵과 음료 등을 준비했다.
내겐 필요 없지만 허기진 인간에게는 필요한 에너지 원이니까.
목욕과 면도까지 끝내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사내는 제법 외지인이 아닌 원주민인 한국인처럼 보였다.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는 건 내 본분 일 뿐, 그것으로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처음이다.
신인류로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은 봉사가 아니라 의무인데.
그러나 내 경직된 논리회로로도 인간에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자 어쩐지 회로가 활성화되었다.
마치 한참 방전되었다가 완전히 충전을 끝난 뒤에 오는 것 같은 활기참.
그래서 이었을지 나는 식사와 샤워를 마친 사내에게 내 본연의 임무를 제안했다.
사전에 그의 의사를 물어보는 건,
내 신체 온도가 적정 온도로 상승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필요하시면 저와 섹스를 할 수 있습니다. 준비할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