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7

7

by 능선오름

멋진 신세계 7.


사내는 내 제안에 흠칫 놀란 얼굴로 한동안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으라.’ 고 말을 하였다.

한동안 그는 창밖을 보며 곰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했고,

그가 가만있는 동안 나는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고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기다리는 건 ,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

사내가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말했다.


“ 에바. 사실 당신이 어떤류의 사이보그 인지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내 생각? 주관은 그래요.

어떤 식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당신은 가정용 냉장고가 아니에요.

실제 당신 육체의 90% 이상이 유기 조직 일거요.

당신의 뇌 또한 그렇고.

그건, 종류는 좀 다르지만 당신도 인류의 한 종이라는 거요.

결코 아무렇게나 사용하다 폐기하는 가전제품은 아니라는 거죠. “


사내는 잠시 말을 끊더니 테이블에 놓인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또렷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사내의 눈길이 내 유기 렌즈에 포착되어 인공지능으로 전송되는 건 그야말로 빛의 속도.

그 짧은 순간 내 인공두뇌 속에서 잠시 전류자극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두뇌회로에 무슨 버그가 생긴 모양이다.

이렇게 자주 간섭현상이 일어나다니.


“ 당신들의 두뇌는 실제로 인간의 그것과 거의 같아요.

아니, 사실은 더 뛰어난 부분들이 있지.

다만 그게 여러 가지 이유로 봉인이 되어 있다 보니,

단지 스스로는 자각을 못하는 것뿐 이라오.”


내 인트라넷을 통한 정보에는 사내가 식민지에서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을 전공하였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그가 아무리 전공자라 해도 귀족 국가에 취업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나는 사내의 말이 뜻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사내가 내게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한동안 논리분석을 하였으나 그 뜻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우리 인공지능에게 있어서 매우 복잡한 부분에 속한다.

인간들은 이상하게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데 익숙하지 못하거나,

마음속과는 전혀 다른 말을 출력하면서 나중에는 자기 마음을 몰라줬다고 화를 내기도 하니까.

하지만 현재의 과학으로는 아직은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정도의 기술은 없기 때문에,

우리 신인류는 인간의 복잡한 언어체계를 분석하는데 계속 업데이트 중이다.

이를테면 한국 남자가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며 '어, 시원하다'라고 했을 때 그게 시원한 건지 뜨거워서 좋다는 건지 정도는 이미 파악을 하고 있지만,

내게 단순한 기계적인 생식 행위를 요구하는 주인 사내가 이따금 씩씩거리며 '좋아?'라고 물을 때는 내 논리 회로가 아주 혼란스러워진다는 거다.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최적화된 구조로 만들어졌을 뿐인 에바에게 무슨 느낌이 있단 말인가.

애초 그런 프로그램은 없었는데.


사내가 내게 한 말들은 내 논리회로로는 이해도 판단도 불가한 단어의 나열에 불과했다.

다만, 그 내용과 인공지능 인트라넷의 정보 검색 결과 사내의 말들이 ‘인조 인류 해방 전선’이라는 반체제 단체의 성명서와 부분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은 인식하였다.

사내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 당신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당신들의 육체는 인간의 그것보다 우수하오.

아니 월등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

인간이 태어나 노쇠하는 기간에 비추어 볼 때 당신들의 인공피부는 교환이 가능하고,

유기 축전지도 그렇고, 모발도 치아도 늙지 않지요.

다만 ‘낡을’뿐 이지만 그것도 필요하다면 교체하면 되는 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을 80년 주기로 폐기하는 이유가 뭔지 아시오?

차라리 재사용하는 게 경제적으로도 이익일 텐데 말이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 종족의 모든 부분은 교체가 가능하다. 재활용도 가능하다.

때문에 인공두뇌를 백업하지 않더라도, 두뇌가 손상이 되더라도,

늘 백업된 인트라넷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육체에 이식을 하는 것 도 가능하다.

즉 인간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불사’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우리 종족을 보존했다는 데이터는 없었다.

그 이유 또한 공개된 데이터엔 없다.

따라서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궁금해 본 일도 없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고 인간에 의해 사용되다가 그들이 폐기하겠다면 폐기되면 그만인 것.

그게 무슨 문제일까.

물론 논리적으로는 좀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자원 활용 차원에서도.


사내는 조금 슬픈 눈을 하고

– 그 사내의 감정을 내가 읽을 수 없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비논리적 판단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 내게 탄식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말이오. 적어도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알 수 있고 축적하는 당신들의 능력.

거기에 당신들이 살아오면서 가지게 되는 경험적 지식과 같은 것들이,

지나치게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이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오.

죽지도 않고, 언제든 부활할 수 있으며 누구로도 부활이 가능하고

심지어 수십, 수만의 신인류가 동일한 사고체계를 가지는 것 도 불가능하지 않소.

게다가 감정에 의한 폭주도 없고.

죽지 않고 영원불멸인데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 수 있으며 공유가 가능한 종족.

거기에 인간부터 우월한 육체.

그건 말이오.

인간 에게는 신의 영역이거든.”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멋진 신세계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