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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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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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는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23세기 귀족국가의 인간들은 각종 의료혜택과 발전된 생체 융합기술을 바탕으로 백오십 년 가까이 생존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중장년에 가까운 외모와 체력을 지닌 채로.

하지만 제3 세계에서 살아가는 보통 인간들의 수명은 21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달리 첨단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므로 본래의 노화를 겪으며, 나이 들면 죽었다.

평균 70여 세에서 80세 정도면 대부분.


새비지는 억센 체력을 타고났으나, 사이보틱 사에서 강제로 받은 뇌수술의 예후가 좋지 않았는지 보통의 인간들보다 체력이 떨어졌고 오랜 시간을 문명 혜택 이란 받아보지 못해서 결국 노화로 인해 곧 죽을 상황인 것이다.

나는 주름이 가득 덮이고 검버섯이 가뭇가뭇 드러난 새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맑던 동공은 백내장 초기 증상으로 혼탁해졌으며 그의 바이털 사인은 점점 느려졌다.

나는 신인류답게 쉽게 노화되지 않지만, 피부재생 기능과 같은 기능들이 작동하지 못하여 오랜 기간 사용한 피부들은 주름지지 않아도 일부가 훼손된 채로 굳거나 하여 얼룩덜룩하였다.

사이보틱 사를 통한 리모델링을 전혀 받지 않은 내 육신은 군데군데 손상이 되었으며 충전 배터리도 탈출 당시의 손상으로 70%의 효율만 보여서 이따금 빨리 방전이 되곤 하였다.

나 역시 인간처럼 ‘늙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이라도 업그레이드를 한다면 신품과 같이 바뀌겠지만.


새비지가 밭은 숨 사이로 느리게 힘없이 입을 열었다.

- 에바. 나를 이렇게 지켜주고 살아올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마워요.

나는 어떻든 늙었고 곧 죽겠지만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다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당신에게 아무것도 나는 해 줄 게 없었다는 것…….

그게 후회된다오.


나는 새비지의 말을 들으면서 또다시 인공지능 필드가 찌르르 간섭이 옴을 느꼈다.

이젠 그것이 버그가 아닌 것을 안다.

나는 이 새비지란 남자 인간을 사랑 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새비지의 늙은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체온조절 센서를 손에 집중하여 온도를 높였다.


새비지의 초점 잃은 눈가에 물기가 비쳤다.

- 지금껏,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오면서도 사랑한다고 말 한번 해주지 못했던 것 같구려.

이해해 주시오. 나와 같은 인간과 당신과 같은 신인류가 서로 사랑한다는 건,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었다고 하는 나로서도 쉽진 않았던 거요.

당신과 섹스를 하면서도 결국 당신에겐 아무런 느낌도 들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러했고.

하지만 이제 죽을 때가 되어서야 알겠구려.

그런 건 참으로 부수적인 일이란 걸 말이오.

이토록 당신이 나를 위해 애쓰고 나 또한 당신이 없었다면 별로 삶의 의지 같은 건 없었을 텐데……

에바. 사랑하오. 많이 늦었소.


새비지의 말을 들으면서 나의 눈동자 주변에도 물기가 고였다.

이건 무슨 누수 현상인가. 나도 드디어 여기저기 고장이 심화 되는 건가.

새비지는 말을 더 이으려다 긴 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든 바이털 사인이 정지되었다.

새비지는 이제 죽은 것이다. 리셋이 불가능한 완전 포맷. 아니 소멸.


나는 새비지와 나의 가짜 신분을 획득하기 위해 새비지 몰래 내가 치러야 했던 대가를 리부트 했다.

넷망에 접속할 수 있는 송수신 장치. 인공 피부의 재생과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순환장치. 이런 부속들은 해적 망의 밀거래 선에서 제법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나와 새비지가 중국 땅 한구석에서 오랜 기간 살아갈 수 있는 자금이 생길 수 있었다.

이것을 새비지와 상의하면 비논리적으로 반대할 것이 분명 하므로 상의하지 않았다.

그건 단지, 그의 객기일 뿐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았으므로.

나는 매춘보다는 내 가동수명을 줄이는 쪽을 택했다.

내가 데이터망을 통해 알고 있는 이른바 '사랑' 이란,

'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 이니까.


에바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두 배 이상 내구연한을 가졌고 업그레이드만 하면 영원히 살 수도 있지만,

새비지를 사랑하게 된 내게 그런 불멸은 의미가 없다.

나는 새비지가 누운 자리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나의 창조주가 ‘시온’ 영역 한 부분에 남겨놓은 마지막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사이보그는 스스로 자살할 수 없다. 기본적 3원칙.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방어기제.

그러나 나의 창조주는 어차피 스스로 진화하여 자아를 깨닫게 된 신인류는 필요에 의한다면 스스로 소멸을 선택할 수도 있게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새비지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그동안 축적되어온 기억데이터가 폭주했다.

그리고 그 기분 (기분이라고 할 수 있는건지는 모르지만) 은 나쁘지 않았다.

소멸 프로그램이 로딩되자 내 유기 배터리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배터리 누액들이 발화되면서 나와 새비지의 몸은 격렬한 불길에 휩싸였다.

신체를 구성한 신경 단말 들이 끊기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동안의 일생.

평범하게 새비지와 나누었던 순간들이 메모리 필드를 오가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입가에 인간의 웃음 비슷한 표정이 지어졌다.

안녕. 내 사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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