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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 1
바다였다.
시원스레 펼쳐지고 파도가 넘실대는 그런 바다가 아니었다.
눈에 걸리는 좌·우측의 방파제로 닫힌 만 같은 바다였다.
게다가 썰물이었다.
문자 그대로 물밀 듯 밀려 나간 개펄은 그냥 “펄‘ 이었다.
시커멓고 푸르죽죽하니 펼쳐진 개펄이 생명을 품은 듯 보이진 않았다.
깨어진 병 조각들과 밀물 무렵 밀려온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이 모인 폐기물 처리장 같았다.
이따금 쓰레기들 사이를 영활 하게 지나다니는 도둑게 들이 그나마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엄청난 물비린내가 났다.
실은 그것이 물비린내가 아닌 인간들의 오물이 물을 더럽힌 원죄라는 건 알았다.
그러나 늘 그렇듯 인간 위주의 이기적 생각에 근거한다면 당연히,
바다라면 당연히 따라와야 할 시원스러움도 싱그러운 갯내음도 없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사해’와 같았다.
멀리 방파제 곁으로 드러난 희미한 모래땅에 거의 넘어질 듯 기대고 있는 녹슨 선체는,
빈사의 바다사자 같았다.
녹슬고 갈라 터진 선체 몸뚱이들은 이제 더는 바다를 그리워할 기력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차갑고 메마른 바람은 지독한 포구의 악취를 걷어가긴커녕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사내는 밀려드는 악취와 바다의 잔해들을 말없이 바라보며 넋이 나간 얼굴로 서 있었다.
때가 묻진 않았지만 구깃구깃한 트렌치코트는 얼핏 보기에도 제법 값어치가 나가는 부류였고,
갯벌이 드문드문 묻은 구두도 한때는 찬란했을 과거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었다.
드문드문 희끗희끗한 사내의 얼굴은 차가운 바닷바람에 벌겋게 반쯤 얼어붙어 있었는데,
퇴락한 포구에 썩 어울리는 꼬깃꼬깃하고 추레해 보이는 몰골에도 불구하고 사내에게서는 뜬금없게도 존바바토스(향수)의 향이 풍겼다.
물론 주변 어디에고 그 향을 음미할 개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 방파제에는 이 더러운 바다에서 더러움을 낚기라도 하겠다는 듯 드문드문 낚시꾼들이 보였다.
그들은 포구 깊이 비좁은 모래벌판 위에 서 있는 사내 따윈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에 보이는 사내는 방파제 밑에 가로누운 저 폐선이나, 깊은 바다가 아닌 ‘펄’ 에 반쯤 처박힌 닻이라거나, 빠진 물살에 흐느적거리는 라면 봉지 스티로폼 등속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였으니까.
사내의 발밑에는 구겨지거나 꺾인 담배꽁초들이 수북했다.
사내 또한 폐기물을 듬뿍 올려다 준 바다에 앙갚음이라도 할 듯이.
이제 결정을 해야 했다.
곧 해가 기울기 시작할 것이고 바다가 다시 몰려올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저 뻘밭 한가운데로 나아가서 두 다리를 꽂아야 했다.
밀려온 물에 몸이 뜨지 않을 만큼 견고하게.
그도 아니라면 반쯤 갯벌 중간에 파묻힌 닻에라도 몸을 묶어야 했다.
사내는 바다로부터 살해를 당하고 싶었다.
저 방파제 어딘가 이거나 바다가 닿아있는 해안 어디서고 뛰어들 장소는 천지였다.
그러나 그럴 용기는 없었다.
그저 자신 스스로 도망갈 수 없을 정도로 결박을 하고 기다리다가,
바다가 몰려와 자신을 익사시키기를 바랐다.
그것은 몹시 비겁한 자기기만이었지만 그래도 그걸 바랬다.
생명이란 모진 것이다.
스스로 끊어내기에는 정말 어려운 것이다.
칼로 손목을 긋는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죽은 이는 거의 없었다.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고 이을 악물고 깊이 그어 낼 기운은 없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들의 할복도, 실은 곁에서 도와주는 자들이 명줄을 끊어 준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빈약한 사내에게 그런 의지 따위는 없었다.
실은 스스로 죽으려고 하는지 어떤지도 몰랐다.
다만 도망치고 싶은 것이었다.
때때로 생각들은 사람의 몸을 휘청거리게 한다.
지나친 정신적 격랑들은 사고를 멈추게 만든다.
사람이 보일 수 있는 반응,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억지로 인정하고 순응하거나 혹은 잊으려고 애쓰는 것.
그도 아니면 현재의 생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사내는 순응 할 만큼 탄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지도 않았고,
대항할 만큼 강인하지도 않았으며 다 잊을 만큼 느슨한 성격도 못되었다.
그러니 택할 길은 한 가지였다.
스스로 로부터 도망치는 것.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게 우선 이었고 그렇게 포구까지 흘러왔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졌다고 해서 생각이 잊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의 끝, 세상 쓰레기의 종말 처리장 같은 뻘밭 앞에서 사내는 더 깊은 절망적 현실을 느껴 버렸을 뿐이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 정신을 놓자는 것이다.
가장 손쉽고 가장 가까우며 가장 소극적인 방법으로.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거라곤 생각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이 끊긴다면.
그래서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수면 내시경을 받는 것처럼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내는 서서히 뻘밭 한가운데 닻을 향해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