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간도 3
다시 사내가 눈을 뜬 것은 정신을 잃은 지 오래되진 않은 듯했다.
그런데도 현실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 것은 칠흑 같은 어둠과 더불어,
사내의 몸뚱이가 아주 이상한 형태로 눕혀 있던 탓 일 것이다.
일단 사내는 자신이 어딘가 누워있긴 하지만 그게 몹시 어색한 자세라는 걸 깨달았다.
뭔가에 칭칭 감기다시피 두르고 있지만,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냉기.
그리고 등이 닿은 곳은 평평하지 않은 뭔가 오목하게 각진 모서리 같은 느낌.
짙은 어둠 속에서 처음 정신 들었을 때 보았던 희미한 불빛.
그리고 여전한 악취와 찬바람.
사내가 부스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다시 그 희미한 불빛이 다가왔다.
예의 어두운 형체와 악취가 그 뒤를 따라왔다.
다시 그 어두운 형체의 윗부분 어딘가에 한 쌍의 눈빛이 보였다.
사내는 그게 사람의 눈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희미한 불빛이 사내의 코끝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고, 이내 그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형체가 사내의 얼굴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기색을 살폈다.
사내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문자 그대로의 봉두난발.
희미한 불빛으로도 느껴지는 거칠고 메마르며 시커멓게 떡이 진 얼굴 같은 형상.
눈동자만이 번쩍거리며 사내의 치뜬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 산 거유?”
의외로 저음의, 그러나 분명 여자의 목소리.
사내는 입을 열려 했으나 목이 찢어지는 듯 아파서 이내 포기하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고개를 마주 끄덕이며 이리저리 사내의 안색을 살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일어나 앉을 수 있겠수?”
사내는 끙 소리를 내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이상스럽게 왜곡된 공간이라 어디를 붙잡을 요량도 없어 몇 번 미끄러지다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 서슬에 사내에게 반쯤 감기고 덮였던 이불 같은 것이 상반신에서 흘러내렸다.
이내 차가운 공기가 맨살에 닿자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둠 속에서 여인으로 보이는 형체가 사내에게 뭔가를 휙 던졌다.
얼결에 그 뭉치를 받아든 사내는 그것이 운동복 같은 것임을 알았다.
뭔가 엄청나게 낡고 누린내가 확 풍겼지만 어떻든 옷가지였다.
사내는 일어서려 했지만 뭔가 왜곡된 어두운 공간 안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옷가지를 대충 꿰었다.
아랫도리도 완전히 맨살이었지만 다행히도 진득한 어둠이 자존심을 가려주었다.
허둥거리며 속옷도 없이 옷을 꿰입은 사내가 더듬거리며 주변 사물을 파악하려고 하자 어둠 속에서 거친 음성이 다시 날아왔다.
“ 조심하슈. 잘못하면 나뒹굴 수 있으니 천천히 움직이슈.”
서서히 어둠에 눈이 익자 사내는 자신이 누워있던 곳 이 무슨 낡은 배의 선실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배가 한참 기울어져 있다는 것도.
그래서 사내가 옹색하게 누워있던 자리가 선실의 선반 비슷한 곳이란 것도.
게다가 여인이 웅크려 앉은 곳이 사실 멀지 않은 서너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란 것도.
희미하게 보이던 불빛은 낡은 건전지에 무슨 낚시용 등 같은 걸 매단 것이란 것도 알았다.
그게 이미 용량이 거의 없어서 희미한 것이란 것도.
사내가 덮었던 이불인 줄 알았던 것은 무슨 축사 같은 곳에 쓰이는 덮개 같은 것이었으며 여인 또한 그런 천 같은 걸 둘둘 말고 있다는 것도.
그게 펠트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보온덮개라고도 불리며 철물업자들 사이에서는 ‘돼지 이불’ 이라 불린다는 건 아주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뭐가 어찌 된 것인지 몰라도 사내를 물에서 끌어 올린 건 여인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기울어진 폐선은 아마도 닻 근처에 있던 바로 그 폐선일 것이고.
문득 사내는 왜 자신이 바닷물에 잠겼었는지를 생각했고 순간 역정이 났다.
아니 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바닷물이 자신의 목구멍과 귓구멍과 콧구멍으로 무차별 쏟아 들어올 때의 고통을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의식 끝에 약간 후회 같은 생각이 언뜻 스쳤던 순간도 기억이 났다.
사내는 여인으로 보이는 형체에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였다.
잠시 말이 없던 여인의 형체가 슬며시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곤 짧게 한마디를 날렸다.
“ 지랄 허네.”
여인이 잠깐 동안 사내에게 쏘아붙인 말을 간단히 줄이면 이랬다.
이 폐선은 자기가 먹고 자는 구역이다.
이미 죽어버린 뻘밭인 데다 밀물 때는 사람이 오지 못해서 자신에게 좋은 집이다.
근데 당신이 하필 여기 와서 ‘뒈져’ 버리면 사람들이 몰려올 거 아닌가.
정말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그래서 건져 준 거다.
덕분에 자기도 힘들었고 물에 젖은 옷가지까지 벗기느라 힘들었다.
게다가 주머니에 돈 한 푼 없더라.
참 쓸데없는 일을 한 거 같으니 날이 밝고 썰물이 시작되면 어서 꺼져라, 뭐 이런.
손등에 까맣게 때가 전 것이 희미한 불빛에도 보였다.
그리고 악의 가득한 시선도.
말하자면 사내는 여인이 나름의 프라이버시를, 것도 동네 주민들도 거의 모르게 살아온 구역을 침범한 것이었다.
사내는 ‘미안하다’ ‘아침에 물이 빠지면 바로 가겠다’라고 했다.
의외였는 듯 여인은 빤히 사내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내 몸을 비스듬한 선실 바닥에 눕혔다.
여기저기 터져나간 매트리스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