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간도 4
사내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폐선을 기어 내려와서 키도 잠그지 않고 버려두었던 고물차로 돌아오니 키도 그대로 꽂힌 상태로 차는 남아 있었다.
워낙 후미진 포구이기도 하고, 낡을 대로 늙은 차를 누가 가져갈 일도 없었던 모양이다.
천근 같은 몸을 시트에 눕히고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었고 오한을 느끼며 일어난 건 오후 나절이었다.
그렇다고 현재의 몰골로 아파트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무리 변두리 비좁은 아파트라지만 사람들의 눈길은 무서웠다.
밝은 볕 아래 자신이 입은 운동복을 보니 상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었다.
그건 아무래도 무슨 축사 같은 곳에 보온역할로 덮어 놓았던 옷 같았다.
악취와 오물이 더께 진 옷이었다.
그래서 밤이 오기를 기다렸고 집에 돌아왔다.
조심스럽게 집안에 들어선 사내는 옷을 벗어 쓰레기봉투에 넣고 꽁꽁 묶었다.
발가벗은 채로 옷이 든 쓰레기봉투를 현관에 내놓은 사내는 욕실로 들어가서 물을 틀었다.
한동안 비워 둔 탓에 한참이 걸리고 나서야 샤워기에서 더운물이 쏟아져 내렸다.
한참을 정수리에 쏟아지는 더운물의 온기를 느끼고 나서야 사내는 단순한 이 행위가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인지를 새삼 느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호사라는 것도.
주방 식탁 위에는 그동안 밀린 온갖 고지서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대책 없어 보이는 고지서들을 보니 문득 식욕이 솟아올랐다.
생각해 보면 어제 아침 이후로 먹은 것이라곤 악취 나는 바닷물 외엔 없었다.
이미 가스는 끊겨 있었다.
사내는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습관처럼 냉장고를 열어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지옥처럼 뜨거운 면발을 들이키듯 목구멍에 쑤셔 넣으며, 사내는 그런데도 라면이 맛있다고 생각했다.
이것 또한 이 집에서의 마지막 호사라는 생각도 했다.
일회용 용기의 밑바닥에 남은 국물까지 털어놓고 난 이후 사내는 집안을 돌아보았다.
기본적인 가전 집기 들. 동네 가구점에서 들여놓았던 값싼 가구 여남은 개.
안방 옷장은 그나마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사내의 집에서 혹여라도 팔아서 돈이 될 만한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서랍은 절반쯤 열려있고 내팽개쳐진 옷가지 혹은 잡동사니 들이 마치 가택수색이라도 당한 집 같아 보였다.
사내는 망연히 작은 포만감을 느끼며 식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장롱 위에 걸쳐져 있는 낡은 트렁크를 꺼냈다.
그 트렁크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옷가지들을 욱여넣고 책장에서 수첩 몇 가지를 넣은 후 여기저기를 돌아보았지만, 더 넣을 만한 건 없어 보였다.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트렁크에 옷가지와 수건 등속을 챙긴 사내는 장롱 안 귀퉁이 속에 파묻힌 등산배낭을 보았다.
등산배낭은 고가품은 아니었지만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새것이었고 그 안에는 코펠과 버너 등 등산에 필요한 물품들이 비닐도 벗겨지지 않은 상태로 들어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사내는 등산복을 꺼내 입고 배낭을 등에 지고 등산화를 신었다.
현관 앞에서 전신거울을 바라보자 새 등산복을 입은 음울한 얼굴의 사내가 한 손에는 낡은 트렁크를 끌고, 등에는 새 배낭을 지고 있는 것이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떠나는 단체여행객의 일행처럼 보인다.
사내는 미련이라도 남은 듯 집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몇 번을 둘러보아도 더 이상 챙길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새삼 사내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물건 들이란 것이 실로 적다는 것을 생각했다.
등에 진 가뿐한 배낭.
한 손에 이끌린 낡은 트렁크와 그 속에 든 낡은 옷가지 등속 들.
그 정도로도 어디서든 당장 한동안 먹고 지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사내는 어두운 시선을 휘휘 돌려 집안을 일별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사내는 발소리를 죽이며 승강기로 향했다.
무슨 이유였을지는 몰라도 사내는 낡은 자동차를 끌고 다시 포구로 향했다.
자신이 어제 목숨을 내놓으려 했던 냄새 나는 포구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