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5

by 능선오름

무간도 5



사내는 한참 동안 이틀 전 자신이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던 뻘밭 초입에서, 물이 빠져나간 펄과 모래톱에 비스듬히 걸쳐져 가로누워있다시피 한 폐선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배는 아마도 어선이었을 것이다.
당시 경황이 없어 몰랐지만 그래도 먼바다 나갈 만큼은 되어 보이는 제법 덩치가 있는 배였다.
한때는 푸른 바다 위에서 온갖 사투를 벌이며 은빛 고기떼를 걷어 올리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반쯤 부서진 모양새로 겹겹이 더해지는 녹을 이고 지고 누워서, 마치 불법 포경선에 작살을 맞고 어느 무인도 해변에 좌초한 고래의 사체처럼 황량함만 더 할 뿐.
배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이제 썩어갈 일만 남은 그곳에서 자신은 다시 살아난 셈이니 기묘한 인연인 셈이다.
어찌 보면 자신의 신세와도 그리 다르진 않다는 감상적인 생각이 든다.

사내는 등산배낭을 어설픈 모양새로 짊어진 상태로 배에 오르기 위해 모색을 하였다.
전날 배에서 내려올 때는 경황이 없어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개펄 사이로 모래톱이 드문드문 이어져 있는 길이 보였다.
그 길을 통해 걸으면 개펄에 발을 담그지 않고도 얼추 배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밀물이 올라오면 묘하게 지워져 숨겨지는 길이었다.
흐리긴 하지만 아직은 밝은 시간이라 길을 따라 걷는 건 어렵지 않았다.
행여나 자신이 배에 오르는 것을 누가 볼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미 퇴락한 포구, 비린내와 쓰레기뿐인 포구에는 인적 하나 없었다.

사내는 비틀거리며 조심스럽게 폐선을 올랐다.
기울어진 갑판은 여기저기 삭아서 구멍을 드러내고 있고, 갑판 중앙에 반쯤 부서진 조타실의 모양이 보였다.
사내는 조타실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지만 여기저기 삭고 부서진 갑판은 발걸음마다 낮은 비명을 질러댔다.
사내가 조타실을 통해 아래의 선실에 들어섰을 때는 어두컴컴한 선실의 부서진 선창으로 옅은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역한 악취와 코를 찌르는 비린내, 지린내.
왜 이곳을 다시 찾아왔던지를 잊을 만큼 강렬한 후각적 폭력.
그 어둠 깊은 선실 안쪽에서 검은 덩어리가 슬금슬금 사내를 향해 다가왔다.
손에는 어둠 속에서도 번쩍이는 날붙이가 보였다.
예의, 그녀의 새된 음성이 들려왔다.
“뭐여 지금? 여기 왜 돌아온 거여? 살려줘서 갔으면 그만이지 뭐가 아쉬워 온 거여?”
사내는 순간 당황했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져보면 아무 연고도 아닐 이곳에 느닷없이 다시 찾아왔으니.
사내는 두 팔을 펴 보이며 그녀에게 적의가 없다는 걸 표현하려 애쓰면서 입을 열었다.
“어…. 저기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그냥….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어둠 속에서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사내를 훑어보았다.
그리곤 경계를 풀지 않은 듯 사내에게 날붙이를 들이대며 선실 한구석, 사내가 어제 아침 누웠던 선반 쪽을 가리켰다.

사내는 기울어진 바닥에 기대다시피 하는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등에 걸머진 배낭이 묵직하게 구석 자리에 걸렸다.
한참 동안 둘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마치 굶주린 두 짐승이 마주 노려보듯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온 거여?”
사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이 폐선으로 돌아온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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