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6

by 능선오름


사내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명품의류를 직수입하는 작지만 탄탄한 무역회사의 총무직원.

그게 사내를 대표하는 프로필이었고 월급이 많지는 않고 근무조건이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평범하게 지낼 만한 보편적인 직장인이었다.

크게 욕심도 없고 크게 미래를 노리지도 못할 그저 그런.

3년 전에 결혼한 아내는 거래처의 매장 직원이었고 보편적인 범주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아니 실은 경제적 사정으로 결혼식은 않았지만, 혼인신고만 한 그런 부부.

아내의 직장은 기혼자에게 냉담했고 결혼 1년이 안 되어 아내는 실직했다.

그 이후로 보험중개를 하게 된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보험 영업보다 돈 있어 보이는 고객들을 상대로 불법 투자 중개를 했다고 들었다. 훨씬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느 날 아내는 편지 한 장 없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내에게 돈을 꾸어 줬다는 채권자들이 사내의 전셋집을 들이닥쳤다.

알고 보니 아내는 사내 모르게 이미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여 보증금을 가로챈 상태였다.

채권자들은 법적 남편인 사내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종주먹을 들이댔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펄쩍 뛰었으나 굶주린 들개 같은 채권자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사내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월급이 압류당하고 정신없이 강요하는 지급각서 같은 것들을 다 쓰고 났을 때, 사내는 순식간에 알거지에 빚쟁이로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직장에서도 결국 쫓겨난 상황이었다.


아내가 짊어지워 준 빚은 사내가 평생을 직장에서 벌어도 갚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금액이었다.

주변 지인들의 충고에 따라 파산선고를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지 행정적인 문제였다.

배신감과 떼인 돈에 혈안이 된 채권자들은 온갖 방법으로 사내에게 협박을 가했고,

어떤 자들은 무릎을 꿇고 빌고 있던 사내의 등판에 오줌을 누기까지 했다.

미래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경.

증발해 버린 아내.

재취업 따위 꿈도 꿀 수 없도록 업계에 퍼진 소문.


사내는 사는 게 싫어졌다.

알콩달콩 이라기보다 어찌어찌로 시작된 결혼의 끝은 흔한 곤궁함으로 막을 내렸다.

타고 난, 소극적 세상살이 방법으론 사내의 재기 같은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사내는 더 크게 살 의욕 같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우연히 도달한 곳이 이 포구였다.

그리고 별 의욕도, 재기할 마음 같은 것도, 무엇도 없는 사내였다.

굳이 따져 본다면 다 귀찮은 그런 마음.

별 소신 없이 목적 없이 살아왔고, 그렇게 들 사는 거라고 믿었었는데.

그나마 이유라도 되던 아내도 말 한마디 문자 하나 없이 사라지고,

사내에게 남은 인생은 아내의 빚을 평생 갚아 나가는 것. 그게 유일한 생존의 이유라니.


그동안의 삶이 적극적이지 않았듯 사내는 자살 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했다.

늘 그래왔듯 기다리자고.

바다가 몰려와서 자기의 비루한 삶을 끊어 주기를.

다른 생존 의욕을 가지기에 삶은 실로 지루했다.

지루하고 비루하고 재미없었다.

그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사내의 넋두리를 한참 듣고 난 여인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사내를 건네 보았다.

한낮이지만 어두컴컴한 선실의 빛으로 여인의 표정을 알 순 없었다.


“그래서?”


사내 말이 끝나자 입을 연 여인의 첫 마디.


“그거랑 여기 돌아온 거랑 뭔 상관이여?”


곰곰이 생각을 돌아보다가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내의 알량한 월세 집은 곧 채권자에게 빼앗기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내의 본가에는 병든 노모만 남아 있었다.

그마나 아들이라고 호적에 남아 있다는 이유로 국가보조금 같은 것도 받기 어려운 그런 상태로.

사내의 무력한 상황들을 보고 몇 안 되는 일가붙이 들은 사내를 전염병 환자 보듯 했다.

아내 쪽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들한테도 아내가 돈을 얻어가서 도망갔다고 사내에게 화를 냈다.

사내가 갈 곳은 없었다.

으레 그런 상황이 되면 역전인근의 노숙자 무리에 낀다고들 했지만 사내는 그건 더 싫었다.

심기도 약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는 게 죽기보다 더 싫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어찌해야 하나.

본의 아니게 죽으려다 살아나니 죽는 게 쉽지 않음마저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그나마 어디 몸이라도 누울 곳이 없음도 알았다.

그러다 생각이 든 게 이 폐선이었다.

어차피 여자 혼자 쓰고 있는 곳이고, 그게 주인 이란 의미는 아닐 테니.

낯 한번 익었으니 좀 낫지 않겠냔 얄팍한 마음이 억지처럼 사내를 이끌었다는 것.

우스꽝스럽지만 그나마 하루 만에 익숙해진 곳이니까.

세상에서 어느 정도 단절된 곳이기도 하고.

사내의 어쭙잖은 넋두리를 듣고 있던 여자가 기가 찬다는 듯 쿡쿡대며 웃었다.


“ 이봐, 당신 ”


사내가 여인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어둠 속에서 긴 한숨 소리가 흘렀다.


“ 노숙자로 산다는 게 뭔지나 알고 하는 말이야?”


사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시 여자의 한숨 소리가 선실에 낮게 흘렀다.

첨에 역전에서 시작하지. 것도 신참은 함부로 끼지도 못해. 아는 척하다 맞아 죽는다고.

종일 멍 때리고 있는 거야. 그러다 누군가 소주라도 얻어오면 흡혈귀처럼 덤벼들어 빠는 거지.

그러다가 어디서 무료급식이라도 한다면 아귀처럼 먹고, 그러고 또 돈을 좀 얻어 술을 먹지.

여름은 괜찮아. 그나마 잠자리가 아무 데고 좋으니까.

겨울엔 주변 공중화장실에 가서 웅크리고 자든가,

남자 노숙자 중에 쪽방 갈 능력이라도 있으면 가서 자는 거지. 그런 거야.

그러다 애 배면 고생도 많고 죽기도 하지만, 나처럼 이미 생리도 끝난 나이대가 되면 다행인 거지.

병 걸리면 골로 가는 거고.

그렇다고 시설 가면 뭐 낫나. 군기 잡히고 강간당하지 않음 다행 인 거지.

뻑 하면 빠따 맞고. 그러니 시설에 들어가 있기도 싫고. 난 여기 배가 젤 좋아.

누가 올 수도 없고, 오지도 않지.

먹을 거 있으면 먹고, 싸고 싶으면 싸. 자고 싶으면 자고, 먹을 거 필요하면 부둣가 나가서 좀 다니면 먹을 거 많아.

근데, 이 생활을 지망하는 거여?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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