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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이 욕을 섞어가며,
간간이 눈빛을 휘 번득이며 말을 쏟아낸 여자를 보면서 사내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니까 노숙자가 되기 위해 결심 같은 게 필요하다는 말 인 것인지.
아니면 군대 신병처럼 그 또한 통과의례가 있다는 것인지.
이 폐선에 대한 권리 주장을 이리 길게 늘어놓는 건지.
자신은 이 세상에서 더는 보통 ‘시민’으로서의 권리도 책임도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그 때문에 그 범주에서 밀려 나오니 그저 할 수 있는 건 죽거나, 아니면 잉여 인간처럼 사는 것.
살아있으되 생존에 필요한 최소 이상을 바라지도 않고, 타인들에게 지시받고 질책받는 것도 싫어서 어딘가에 숨어 들려던 것뿐이고 우연히 이곳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여자 같지도 않은 여자는 나름 텃세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굳이 이곳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물색없이 낯가림 심하고 요령도 부족하던 사내 처지에서는 어쩐지 이곳이 자신의 ‘노숙 인생’을 시작하기에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겠냐는 근거 없는 생각 같은 게 있었을 뿐.
세상천지에 깔린 게 빈 땅 이고 공터라곤 하지만 정작 사람이 아주 기본적인 것을 갖춘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사내만 해도 털털대는 차량을 끌고 어디라도 잠시 세워 생각이 나마 다듬으려 해도 거의 모든 빈 땅은 주차구획이 있었고 잠시만 차를 세워도 누군가가 나서서 사내를 제지하곤 했다.
그도 아니면 돈을 내야만 했다.
분명 세상은 넓고 빈 공터는 많았지만 낡아빠진 데다 자그만 자신의 자동차 하나 세울만한 장소는 없었다.
그래서 어디든 차를 좀 세워 보겠다고 막연하게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 온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렇게 밀려 밀려가다 온 곳이 이 포구였던 거다.
세상이 그리 넓어 보여도, 사람의 눈길이 없는 곳은 그만큼 드물었다.
여자가 폐선에 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여자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도 확실했다.
물론 반쯤은 넋이 나간 사이에도 사내 자신은 자신도 모르게 뭔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 폐선에 좀 거친 남자 노숙자가 선점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사내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기이한 여자가 자신의 무력한 죽음에서 자신을 끌어내어 살려냈다는 것은 일종의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준 게 맞다.
사내 자신은 의식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사회의 끄트머리에 밀려났다고 생각한 사내의 처지에서조차 그 여자는 어쩌면 자신보다도 더 취약한 입장일 거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머리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이유로 정말 거기서 거기였을 서로의 남루한 처지에서도 조금이나마 자신이 우월한 처지가 아닌가.
그런 조건이라면 이 버려진 장소에서 대충 지내도 그 여자가 거부는 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비슷한 게 무의식 저편 어딘가에 스멀스멀 새겨져 있는 건지도 몰랐다.
사내는 여자의 말이 끝나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저 스스로 다른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염병”
여인의 대답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왔다.
사내는 볼품없이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여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펄 가장자리에 바짝 메마른 해초 더미처럼 헝클어져 있었고,
본래의 형태나 재질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엉키고 덧입혀진 옷은 옷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질긴 가죽처럼 보였다.
때에 절어서일지 아니면 볕에 그을려서일지도 모를 정도로 얼룩덜룩한 그녀의 얼굴은 본래의 피부색을 잃은 지는 오래였다.
그러나 그 무채색과 입체파 화가의 그림처럼 균형과는 거리가 먼 얼굴 한복판에 박힌 두 눈동자는 생각보다 혼탁하지 않았다.
폐선 내부의 어스름한 빛 속에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였다.
“ 그 정도 변죽으로 어디를 나가서 산다고 그래?
이거 보슈. 노숙도 나름 철판을 깔아야 하는 게야. 갖고 온 거 있으면 다 꺼내 보라고.”
사내는 얼떨결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선실 바닥에 등산배낭을 펼쳐 보이게 되었다.
한 번도 펴 보지 않았던,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다짐하며 장만해둔 등산용 물건들.
침낭. 코펠. 버너. 그릇들. 라면 몇 개와 통조림. 단출한 옷가지 몇 개.
돈이 될 법한 물건 같은 건 애초 없었다.
두고 온 집 안에도 이미 뭔가 돈이 될 만한 것도 없었지만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각다귀 같은 채권자들에 의해 깡그리 사라졌을 것이었으니.
여인은 바짝 앞으로 다가앉아서 이것저것 몇 안 되는 물건들을 솎아내고 자기 앞으로 빼고,
그도 아니면 사내 앞으로 툭 밀어 놓고 하였다.
뭔가를 혼자 중얼중얼하면서.
때로는 투덜투덜하면서.
한참 동안 배낭 속 물건들을 주물럭거리던 여자는 뒤로 물러앉아서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둠 속이지만 찢긴 선체 틈으로 들어온 볕에 옅게 보인 그녀의 손은 그야말로 때가 절어 새카맸다.
의아한 얼굴로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내에게 여인이 입을 열었다.
“ 일단 담배 한 대 줘 보슈.”
사내는 화들짝 놀라 담배 한 개비를 내밀고,
반사적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댕겨 주었다.
한동안 여자는 말없이 맛나게 담배를 피웠다.
선체 안에 드문드문 비치는 햇살들에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아른거렸다.
사내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원래 반듯했을 담배 개비는 사내의 주머니 속에서 이리저리 짓눌린 탓인지 마치 현실의 사내처럼 일그러지고 뒤틀려 종이로 감싼 담배 개비 속 담뱃잎이 흘러나와서 헐렁했다.
낡은 옷 속 사내의 앙상한 몸뚱어리처럼.
어둑하고 비린내가 진동하는 폐선 안에서 사내와 여자는 한동안 말없이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여자는 말없이 담배를 빨아올리며 폐선 여기저기 뚫린 틈바구니로 언뜻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마치,
주인 없는 유기견이 너덜너덜해진 몰골로 넋 놓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했다.
사내는 아마 자신의 몰골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거라는 자괴감에 담배 맛이 썼다.
담배를 선체 벽에 비벼 끈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뭐 좋아. 당신이 여기서 곁 살이 하겠다고 하면 내가 받아 주기로 하지. 대신 조건이 있어.”
사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이 쓰레기장 같은 곳에 세 같은 걸 받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돈도 없지만, 그녀가 돈을 원하는 것으로 생각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은 이미 볼 장 다 본 인생이라 생각하며 반 이상 넋이 나가 있는 사내조차 얼이 나가게 만드는 말이었다.
여인의 어둠 속 얼굴에 이가 희게 드러났다. 웃는 것 같았다.
“ 나랑 같이 섹스를 하는 거야. 지금 당장. 그게 조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