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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어둠 속 여인의 입에서 ‘섹스’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사내는 뭔가 잘못 들었는가 했다.
그러다가 여인이 ‘싫다고? 그럼 꺼져. 거리에서 살겠다 결심했다면서?
그럼 나 같은 계집도 품어보고 그래야지 뭔.’ 이라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이 옳게 들은 걸 알았다.
당황했고 순간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기실 눈앞의 냄새 나는 덩어리를 ‘여자’라고 부르는 건 생물학적 구분에 불과할 뿐이었다.
행여나 그녀에게 성적 욕망 이 있으리란 생각도 해 본 적이 당연히 없고,
애초 이 폐선에서 노숙을 해 보려 한 이유도 그녀가 상대적으로 남자 노숙자보다는 덜 위협적 일 거란 얕은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혹은 스스로가 서로에게 이성으로 느껴질 거란 상상도 한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냄새.
동물 같은 누린내와 바다의 비린내가 뒤섞인 냄새만으로도 욕지기가 솟구칠 판인데 그녀와 섹스를?
잠시 그녀의 두서없던 말을 사내는 생각했다.
거리에서 살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건가라고 생각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녀 말대로 이제 보통사람의 삶을 던지려면 밑바닥 더러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맞았다.
이따금 역전을 지날 때마다 에둘러 피해가고 했던 그들의 일상모습처럼,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고 구걸을 하며 술에 취해 다투고 아무 곳에서나 자고 그래야 했다.
이를테면 그녀가 요구하는 건 ‘남녀 간의 섹스’가 아니라,
일반 사회인을 노숙자의 정신 상태로 ‘정화’ 시키는 의식일는지도 몰랐다.
그래, 어쩌면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의 ‘더러움’에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르지.
사내는 욕지기를 참으며 말없이 입고 있던 등산복을 하나씩 벗었다.
어둠 저편에서 그녀도 입고 있던 아니,
차라리 그녀의 거죽처럼 보이는 넝마 같은 덩어리 들을 벗어내는 것이 흘끔 보였다.
비좁고 기울어진 선체에서 그들은 불편하게 세상 마지막 자존심을 벗겨내었다.
그녀가 손짓해서 부른 위치는 그녀가 걸터앉아 있는 매트리스였다.
한낮의 어둠.
그리고 간간이 스며드는 햇볕과 옅은 냉기.
비현실적인 악취는 기묘하게도 점점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내의 후각세포가 마비된 모양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씩씩거리며 사내의 불두덩을 감싸 쥐었다.
그러나, 당연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제아무리 카사노바라 하더라도, 이런 곳 이런 상황. 게다가 이런 여자에게 본능이 반응할까.
사내의 낭패스러운 마음과는 상관없이 여자는 제 맘대로 사내의 불두덩과 엉덩이,
그 샅덩이들을 낱낱이 스멀스멀 주물러갔다.
그리고 사내의 손을 억지로 끌어 자신의 가슴으로 짐작되는 곳에 이끌었다.
물컹, 하는 느낌, 따스한 맨살의 감촉에 사내는 의외의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도 여자는 여자였구나. 곰 가죽 같은 것으로 겉을 싸매고 거칠게 말을 내뱉지만, 여자였구나.’
사내는 스스로 의지와 무관하게 갑자기 아랫도리에 불끈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당황스러웠다.
사내는 처음에 생각했다.
만약 짐승과 섹스를 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고.
어디가 어딘지 모를 어둠이었지만 여인의 피부는 버석거렸고 그것이 아마도 세월에 전 때 같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움직일 때마다 문득 느껴지는 악취.
아무리 후각이 익숙 해졌다 해도 그것은 세상의 온갖 악취들의 칵테일 같아서 사내는 중간중간 숨을 멈춰야 했다.
그런데도 그녀의 몸은 뜨거웠다.
게다가 사내가 여자를 안아 본 것은 기억도 안 나는 아득한 과거였다.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은 장소와 분위기에 상관없이 두 남녀는 짐승들처럼 교미했다.
사실 사람과 동물의 교미가 썩 다르진 않다.
그 단계까지의 수많은 대화, 엄청난 수식어 들.
그리고 향수와 핑크빛 휘장 같은 것 들은 수컷동물이 화사한 유리병 조각들로 둥지를 꾸미는 것과 무엇이 그리 크게 다른가.
사내와 여자에게 인간의 언어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냄새, 어둠, 땀, 체액, 거친 숨소리와 신음.
폐선의 삭아 빠진 선실은 거친 섹스의 냄새와 소리로 반향 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매트리스에 던지듯 등을 내려놓은 사내는 의식적으로 여인의 몸을 만지려고 했다.
경험적으로 남녀 관계란 게 이런 방식으로 살을 섞고 나면,
설사 그게 돈을 주고받은 사이라 할지라도 잠시 잠깐이라도 친밀감 같은 걸 표시 하는 것이라고 할까.
여인의 반응은 단호했다.
“ 염병 ”
여인은 벌떡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벗어놓은 거죽을 다시 걸치는 모양새였다.
무안해진 사내도 일어나 선실 바닥에 허물처럼 벗어놓은 등산복을 걸치려고 했다.
여인이 사내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말을 하고는 어둠 속에서 옷 뭉치 같은 것을 던졌다.
사내는 희미한 빛에 살펴보곤 그것이 자신이 그저께 개펄에 몸을 담글 때 입고 있었던 트렌치코트와 옷가지인 것을 알았다.
옷은 말라 있었으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듯 개흙투성이에 꾸깃꾸깃 한 상태였다.
“ 그걸 입어. 노숙자가 뭔 깔끔한 옷이야. 이 짓도 나름대로 콘셉트가 있는 거라고. ”
‘콘셉트?’ 그녀 입에서 생경한 단어가 튀어나오자 사내는 저도 모르게 쿡 하고 실소를 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여인의 몸이 굳어 버린 것을 느낀 사내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가 예의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섹스 한번 했다고 뭔가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웃기지 마.
어차피 한군데서 지내려면 이 꼴 저 꼴 똥 싸는 꼴까지 보여줘야 하는 게 이 바닥이라고.
성가시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고, 나도 이따금 은 사람의 살이 그리울 때도 있는 거라고.
말하자면 이 섹스는 이 배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신고’ 같은 것일 뿐이야.
전우애 같은 그런 거지. 그러니, 뭔가 나랑 가까워졌다는 둥 헛짓거리 말라는 얘기 야.”
단호한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사내는 이 기이한 상황이 악몽 같은 것이 아닌 현실이라는 자각이 머리 한구석에 떠올랐다.
여인은 구시렁거리면서 사내에게서 뺏은 라면을 꺼내어 오도독거리기 시작했다.
뻘쭘해진 사내는 앞에 놓인 구겨진 옷가지들을 힘들게 꿰입었다.
비좁고 기울어진 선체에서 옷을 입자니 힘이 들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스멀스멀 냉기가 올라오기도 했고.
사내가 옷을 입는 동안 여인은 라면 한 개를 다 먹어치웠는지 뭉그적거리며 선실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쏴’ 하고 여인이 소변을 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어둠 속에서도 얼굴이 붉어졌다.
갑자기 몸이 근질근질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가 옮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