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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락한 포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한 쌍의 노숙인들이 생긴 것은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오래전부터 정신 나간 듯한 여자 노숙인이 이따금 포구와 낡은 어시장을 어슬렁거리며 구걸을 하거나 담배꽁초를 줍는 것을 본 적이 있던 사람들은 미친년이 서방을 얻은 모양이라며 킬킬대며 웃었다.
아무리 여자라곤 하지만 오물 덩어리 같은 그녀에게 행여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따금 동네 개구쟁이들이 포구 길을 지나는 그녀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때는 있었지만,
그녀의 사나운 댓거리를 당하고 나면 더 지나친 장난질은 없었다.
퇴락한 바다 근처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거친 사람들에게도 그녀는 피해야 할 짐승 같았다.
그 곁에, 어딘지 어리숙하고 체구도 빈약한 사내 하나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따라다니는 모습은 이따금 포구의 상인들에게 심심찮은 입방앗거리가 되곤 했다.
그들이 어디에 머무는지는 상인들 사이에서 간혹 화제가 되기도 하였으나, 이내 일상에 분주한 사람들에게 그 사람 같지 않은 남녀에 관한 관심은 잊히곤 했다.
처음 폐선에 스스로 발을 디딘 그 날 이후로 여인은 사내에게 별다른 요구를 하진 않았다.
매일 추위가 몰려오는 밤이면 두 사람은 들짐승처럼 달라붙어 잠을 잤다.
그것은 이성 간의 문제가 아닌 생존에 대한 문제였다.
잠이 깨면 썰물이었다.
뭍이 드러나면 포구와 어시장을 돌며 먹을 만한 것을 줍거나 얻어왔다.
그것을 가지고 끼니를 때우고 나면 담배꽁초를 주우러 다녔다.
이따금 은 버려진 빈 병이나 폐지를 주워서 고물상에 팔았다.
동전 몇 개 혹은 운이 좋을 땐 지폐 한두 장이 생겼고 그것으로 소주를 사서 마시곤 했다.
그들과 일종의 거래 혹은 매매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상을 쓰고 코를 쥐었다.
마지못해 돈을 주고받을지언정 절대 말을 섞으려고 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의 때 묻은 돈을 받는 건, 포구에선 보기 드문 노숙자들의 행패가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 남녀가 한 번도 어떤 행패를 부린 일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폐선의 선수 갑판 밑에서 햇볕을 받고 누워 있었다.
낮에 절대로 배 위에 얼씬거리지 말라는 여인의 엄명 때문에 드나들 때 말고는 사람이 사는 것 같은 인기척은 금물이었다.
그나마 배의 선수 갑판이 거의 부서져서 아래에 있는 기관실에서는 한낮 햇볕을 받을 수 있었다.
겨울이 물러가고 따사로운 봄볕이 폐선 가득 비치고 있었다.
사내는 볕을 받으며 기울어진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로 노숙자로 지낸 두 달을 생각했다.
죽지 않을 만큼 먹고, 돈이 생기면 술을 마셨다.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지만 주운 담배꽁초라고 해서 특별히 못 피울 건 없었다.
처음 안 씻어서 가렵고 뭔가 불쾌하던 느낌은 한 달 만에 사라졌다.
볕이 들면 누워서 볕을 쬐고, 밤에 썰물이 들면 여인과 함께 엉켜 잠을 잔다.
여인은 처음 이후로 섹스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사내도 별반 마음은 없었다.
단지 서로의 체온이 필요해서 부둥켜안다시피 자는 것일 뿐 무슨 애정 같은 건 없다.
용변은 배의 바닥이 깨어진 기관실 구석에서 봤다.
낮에 오물이 쌓여도 밤에 밀물이 들어왔다 나가면 수세식 변기처럼 씻겨간다.
뭐 이런 정도라면 큰 불만이 없다.
사내가 그동안 겪어오던 번민과 분노 혹은 절망 같은 것이 여기서는 없었다.
어찌 보면 이런 마음의 평화를 가져 본 일이 있었던가 할 정도였다.
사내가 멍하니 드러누워 봄볕을 즐기고 있는 곁으로 여인이 스쳐 지나갔다.
여인은 사내가 있건 말건 기관실 바닥의 구멍이 뚫린 곳에 쭈그리고 앉아서 소변을 본다.
사내는 반쯤 감긴 눈을 통해 그녀가 하는 양을 훔쳐보았다.
기울어진 기관실 바닥 삭아 뚫린 사이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볕에 반짝인다.
사내는 문득 성욕이 솟구침을 느끼며 당황스러움이 동시에 솟구쳤다.
비워진 선실에서 잠이 든 그녀는 둔중한 발걸음 울림에 눈을 떴다.
제법 바람이 차가워서 웅크리고 이불을 돌돌 말은 채로 잠이 든 그녀의 곁에 어두운 그림자 몇이 둘러섰다.
그녀는 머리끝이 쭈뼛거렸지만 감히 일어날 엄두를 못 내었다.
이미 여남은 명의 사내가, 어른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고 플래시 불빛이 이불로 감싼 그녀의 몸뚱이를 훑고 있었다.
사내들이 저희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 얘 뭐여? 저기 갈봇집 딸 아녀? “
“ 그렇구먼. 이년 제법 자란 게 먹음직스럽지 아녀?”
“ 뭐여? 이런……. 너무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애 아닌가?”
“ 뭐 어때. 옛날 같음 시집갈 나이 아닌가. 어디 한번 젖비린내가 가셨나 맡아볼까? ”
“에끼 이놈, 완전 개 같은 놈일세.”
킬킬대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내들은 이미 술기운이 과한 것 같았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켜 앞에 있는 사내의 불두덩을 내지르고 뛰었다.
아니, 뛰려고 했다.
머리채를 잡혀 순식간에 갑판에 내동댕이쳐진 것은 일순간이었다.
“어딜 요년이! 어른을 치고 도망가려고 해?”
대거리할 틈도 없이 솥뚜껑만 한 손이 그녀의 뺨에 작렬하고 그녀는 걷어차인 배를 움켜쥐며 헉,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몇 놈이 어린 그녀의 몸뚱이에 체중을 실었는지 몰랐다.
생전 처음 겪는 아픔에 몸부림치다 울다 기절하고, 또 몇 놈이 짓밟는지.
어둠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고통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
어슴푸레 새벽이 오던 시각 얼어 죽을 듯한 냉기에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사내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거의 찢긴 치맛자락을 걸쳐 입고 끊어질 것 같은 아랫배의 고통을 참으며 기다시피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다 썩은 툇마루에 모를 사내의 장화가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 와중에도 끌고 온 이불 더미를 헛간에 넣고 그 위에 쓰러져 까무러쳤다.
이튿날 그녀의 몰골을 본 어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방에 들어가 누워있으라고 말하곤 개펄로 나갔다.
부엌에는 멀건 어죽 같은 것을 끓여 놓고서.
그렇게 며칠 몸살을 앓고 난 그녀가 학교에 갔을 때 담임은 그녀를 불러 매를 때렸다.
무단결석을 했다는 이유였다.
아팠노라고 변명했지만, 거짓말이라고 했다.
동리 아이들이 그녀가 집 밖에 드나드는 것을 보았다고 고자질을 했다고 한다.
이를 악물고 매를 견디자 이번에는 독한 년이라고.
부모 하나 찾아 인사도 할 줄 모르는 년이라고 욕설이 들려왔다.
곧 중학교 진학도 할 건데 뭐 하는 거냐고 하는 소리도 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고함과 함께 매타작은 끝이 났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절뚝이며 자리에 앉은 그녀의 뒤에 앉은 사내놈이 그녀의 등짝을 연필로 쿡쿡 찔렀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노려보자 짓궂은 녀석이 혀를 날름 내밀고 씩 웃었다.
그날 하굣길에 그녀는 생전 처음 사내 녀석을 길가의 조약돌로 흠씬 폐 주었다.
녀석은 눈에 멍이 들고 코피가 흐른 상태로 엉엉 울며 돌아갔다.
다음날 녀석의 어머니가 교실로 들어와 그녀를 패대기치다시피 했다.
선생은 애써 학부모를 말리곤 학부모 앞에서 그녀에게 모질게 매질을 했다.
그게 그녀 학교생활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