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10

by 능선오름

학벌 없고 집안 없는 여인이 할 수 있는 일 이란 읍내에는 거의 없었다.

여인은 어미처럼 새벽 썰물에 나가 갯벌을 기어 다니거나, 저녁에는 포구에 있는 선술집에서 회를 썰었다.

그녀의 어미는 나이가 들수록 개펄 일이 힘에 겨운지 뱃놈들을 집안에 끌어들이는데 더 몰두했다.

그런다고 살림이 나아지는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때로는 뱃놈에게 얻어맞고 간간이 돈을 뜯기는 것도 같았다.

제법 처녀티가 나게 된 여인은 그런 어미가 보기 싫어 인근의 버려진 어선에서 생활했다.

선실을 이리저리 손보아 방처럼 만들었고, 몰래 인근 전봇대에서 전기를 끌어다 썼다.

이따금 횟집을 드나들던 얼굴 멀쑥한 사내가 가끔 그녀에게 술을 청하곤 했다.


주변 사람들 말로 ‘시인’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시인 이란 잘 모르지만, 많이 배우고, 국어 교과서에 글이 실리는 존재 같은 것이었다.

위축된 그녀가 공손함에 더하여 시인을 대하자 그 시인은 그녀가 아리땁다고 했다.

그렇게 술잔을 주고받고 그러다가 그녀의 일상을 들려달라고도 했다.

부끄러움에 몸 둘 바 모르던 그녀는 이따금 달이 바다에 가득하던 밤에 바닷가에서 시인을 만나곤 했다.

그가 읊는 시라든지 문학이라던지 몰랐다.

다만 뱃놈들과는 달리 얼굴이 희고 여자처럼 손이 고운 시인이라는 사내만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곤 했다.

시인이라는 사내는 국어교사라고 했다.

건강이 나빠져 요양차 인적 드문 갯마을에 와서 머문다고 했다.

어찌어찌 그녀가 머물던 폐선에 시인이 들어왔다가 몸을 섞게 되었다.

그날 밤 달은 밤바다에 가득하고 파도는 잔잔하게 철썩였다.


어느 날 달거리가 멈춰진 여인은 시인에게 아이를 가진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달빛 아래서 고요히 그녀의 두 눈을 들여다보던 시인은 말없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귓전에 대고 ‘슬픈 베아트리체 ’ 어쩌고 탄식을 하기도 했다.

그날 밤 이후 시인은 갑자기 동리에서 사라졌다.

소문으로 시인이 사실은 이미 결혼하여 아이가 있고, 부잣집 사위라고도 했다.

요양차 내려와 있다가 병이 다 나아서 아예 돌아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시인이 원래 어디에 살았는지 연락처는 어떤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그녀도 그랬다.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여인은 처음의 불안감이 노여움으로, 다시 체념으로 돌아가는 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체념이 익숙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혐오도 컸다.


달도 없던 그믐밤.

몸이 좋지 않아 쓰러진 어미 병수발을 들기 위해 오랜만에 집에 간 날이었다.

그녀의 어미는 이미 중증 알코올중독이었다.

술기운이 없으면 사물에 대한 변별능력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어미를 약을 먹여 재우고 곁에 누워 잠이 들었다.

생전 처음 하는 입덧에, 것도 남몰래 하느라 지치고 힘든 기운에 여인은 혼절하다시피 했다.

밤이 깊었다.

여인이 고단한 잠결을 깨운 건 육중한 중량감과 아랫도리를 찌르는 아픔 때문이었다.

막 잠을 깬 그녀의 입에는 헝겊 뭉치 같은 게 억지로 물렸다.

잠 서슬에 놀라 버둥거리는 사이 억센 손길들이 그녀를 꼼짝 못 하게 눌렀다.

사내들은 킥킥거리며 그녀의 몸뚱이를 씩씩거리며 짓밟았다.

노동으로 단련된 그녀로서도 둘인지 셋인지 모를 억센 사내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들은 킥킥거리며 연신 음란하고도 잔인한 대화를 했다.

‘어미년보다는 역시 젊어서 괜찮다는 둥’

‘에미 는 약에 취한 것인지 해도 잘 모른다는 둥’

‘자기들이 머리 올린 계집치곤 제법 잘 여물었다는 둥’

‘뺀질거리는 서울 놈하고 붙어먹더니 꼴좋게 차였다는 둥’

재갈이 물린 상태에서 여인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지만, 그뿐 이었다.

홉뜬 그녀의 눈가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랫배에서 생명이 지워지는 아픔이 느껴지며 여인은 정신을 잃었다.


이튿날 어미를 찾아온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왔다.

그녀는 하혈을 한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어미는 알코올 중증 상태로 도립 병원에 강제 입원 되었다.

그녀의 진술을 경찰관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녀가 살던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녀의 어미와 그녀를 ‘갈보’라고 부른다는 걸 알고 순경은 별 시답잖은 일이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오히려, 매매춘 혐의로 구속을 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강간 이란 증거도 없고, 평소 행실과 정황으로 보아 유리할 게 없다고도 했다.

동리의 주민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녀를 창녀 같은 여자들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렇게 여인은 서서히 체념했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 더는 사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열차를 타고 무작정 올라간 도시의 역전.

거기서 그녀는 노숙자가 되고, 때로 노숙자들의 노리개로 혹은 몸을 팔아 하룻밤 이슬을 피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기나긴 여인의 말이 끝나갈 때쯤에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사내는 여인의 기구한 운명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과 자신이 뺨을 맞은 상황과의 연계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걸 따질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팔자 못지않게 이 여인의 팔자도 정말 기구하고 대책이 없구나 싶었다.


여인은 주워 모아 놓은 담배꽁초에 불을 붙여 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난 사내새끼들 따위 관심 없어. 더구나 섹스 같은 거 원한 것도 아니야.

처음 네게 섹스를 하자고 했던 건, 내 더러운 몸뚱이라도 안을 용기가 있다면 받아주려고 한 것뿐,

이 좁은 곳에서 서로 편하게 지내려면 그게 낫다고 생각한 거라고.

나도 사람의 살이 그립고 그렇긴 하지만 거기 까지여.

당신이 발정 난 개새끼처럼 군다고 받아줄 생각 따윈 애초 없으니 정 못 견딜 것 같으면 저리 가서 용두질하든지 말든지.”


새된 목소리로 쏘아붙인 그녀가 선실 안쪽으로 훌쩍 들어가 버리고 난 후, 사내는 한참 동안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뚫린 갑판 사이로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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