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15

by 능선오름

썩은 냄새가 가득하던 포구에 만장 깃발과 향냄새가 가득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폭죽을 터트리고 정체 모를 사당패 비슷한 무리가 정신 사납게 꽹과리와 장구를 두드리며 방파제를 돌고 돌았다.

하늘은 썩 어울리게 흐렸고,

인적 하나 없던 포구 모래톱과 방파제에는 상복 색 같은 차일이 쳐지고 나름 인근의 유지라고 할 만한 부류들이 거만한 표정으로 풍어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 빠진 개펄에 나무 궤짝들을 겹쳐 단을 올려 제를 올리고 난 제단과 미리 기름이 뿌려져 있던 폐선은 한창 불길이 치솟아 방파제까지 이글거리는 불기운이 어른거렸다.


이따금 빠지직 소리를 내며 폐선의 몸체가 부서져 내리면 안에 갇혀있던 불기운에 불꽃들이 허공으로 치솟다 사그라지곤 했다.

사전에 여기저기 통문을 넣어 놓은 이유로 수많은 군민이 몰려들어 제법 축제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때를 만난 장사치들은 인파를 헤쳐 다니며 막걸리와 안주팔이에 바빴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방파제와 반대편에 있는 모래톱 끄트머리에 사내가 서 있었다.

꾸깃꾸깃한 등산복 차림의 사내는 좀 지저분한 행색이긴 해도 나름 풍어제 구경을 온 뜨내기처럼 보였다.

그는 넋을 놓고 불길이 치솟는 폐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세상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흔히 말하는 ‘막장’과 같은 의미로 선택했던 그곳이.

악취 나고 야릇하며 고단하고 배고프고 추웠고.

그렇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으로 아무 책임도 의무도 무엇도 없이 한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그곳.

그곳이 깡그리 불길에 태워져 가고 있었다.

지금 역시 미래를 생각할 여지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인간인지라 나 홀로만은 살 수는 없어서 찾아 들었던 그곳.

사람 본능의 밑바닥을 드러내어야 했기에 외려 마음 편하던 그곳.

그곳을 수많은 사람이 손뼉을 치고 꽹과리 치며 불사르고 있었다.

사내의 눈가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동네 주민 몇몇이 잔치를 돌아보다가 먼 모래톱 위의 사내를 보았다.

추레한 중년의 사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곤 참견하기 좋아하는 장년 하나가 사내에게 말을 걸으려고 다가서다 멈칫했다.

그리곤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일행에게 돌아왔다.


“왜 그래? 뭐 물어보려던 거 아녔나?”

일행이 장년에게 묻자 인상을 쓰며 답이 돌아왔다.

“ 아 몰라. 그놈 새끼. 선창 생선쓰레기통 썩는 냄새가 나네. 아 젠장. 구역질 나여.”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부두에 드나들던 그 노숙자 연놈이 안 보이던데…….저놈 아녀?”

“글씨?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냄새가 영 그놈들 냄새네. 그려. 아 재수 없어. 칵!”


사내는 휘청 이는 걸음으로 모래톱 뒤편 방풍림을 가로질러 나갔다.

사내는 또 다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다 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다시 새로운 지옥이 펼쳐질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살아 있는 이상 자신이 살아갈 곳은 늘 지옥 변두리 어딘가라는 것이었다.

그 무기력한 현실과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 같은 것이 슬펐다.

소나무제선충에 의해 다 말라죽은 방풍림 뒤에 먼지가 잔뜩 쌓인 사내의 차가 있었다.

오랜 시간을 두었지만, 이따금 시동을 걸어주곤 했기에 운행은 될 것이었다.

사내는 모래 먼지가 가득 쌓인 차 유리창을 손으로 주욱 훑어내고 손을 탈탈 털은 후 차량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드러난 녹 자국들이 이 차도 폐선과 그리 머지않아 운명을 함께 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반쯤 녹이 슨 운전석을 열었다.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운전석 시트가 서늘했다.

기름은 거의 한 칸 정도 남아 있었다.


한참동안을 죽어있던 엔진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사내는 운전석에서 내려 맞은편 조수석의 문짝을 열었다.

마치 근사한 호텔앞에 세운 고급세단에 막 성찬을 마치고 돌아온 귀부인을 맞이하듯,

반지르르한 모피코트 대신 넝마를 두른 여인에게 자리를 권하곤 탁, 하고 차문을 닫은 사내가 운전대로 돌아와 마치 클라이드가 보니에게 대사를 넘기듯 입을 열었다.

“ 어디로 갈까요.”


옆에 앉아있던 여인이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기름이 다 떨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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