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 讞利於答攄 외전 4

짝퉁과 자가복제

by 능선오름


얼리어답터 讞利於答攄 외전 4

짝퉁과 자가복제


70년대에 일본 회사들이 전자식 쿼츠 시계를 대량생산하여 저가로 공급하기 시작하자 잠시 스위스 기계식 시계회사들이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값싸고, 가볍고, 디자인도 다양하고, 재질도 다양하니 당연히 이제 기계식 시계는 끝났다는 여론도 있었고, 당시 많은 스위스 메이커가 다른 부류의 유럽 명품 그룹에 팔렸다.

그 시절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스위스 R사를 매입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당시 삼성그룹은 삼성시계라는 회사가 있었고, 카파라는 브랜드와 스위스 론진시계를 라이선스 생산하고 있었으니 영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럽의 전통 있는 메이커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몇 년이 지나서 R사는 유럽 전통의 명품 그룹에 더 비싼 값에 팔렸다.

하지만 R사의 경영과 운영방식은 여전히 불가침 영역으로 계약했다.


그래도 수입시계가 드물던 당시에 한국 삼성시계에서 생산한 론진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꽤 큰 메리트였다.

그때도 공식 수입망이 없이 대부분의 유럽산 시계들은 밀수를 통해 들어왔고, 그렇게 들여온 밀수품을 버젓이 백화점 모퉁이에 매장을 차려서 판매했으니. 물론 공식 서비스 같은 건 없었지만.

삼성시계는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서 유럽의 기계식 시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첫 시도를 한 셈인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TSMC와 삼성반도체의 차이처럼 되어 버려 결국 사업을 접었다.

시간이 흘러 유럽의 메이커사 와 공식적으로 수입대행을 하는 수입상사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수입처에서 백화점 매장을 직영하는 경우보다는 기존 밀수매장?을 운영하며 백화점과 관계를 유지해 온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대리점 영업권을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명품 시계’ 로서 브랜드의 디자인과 판매가격과 영업방식을 따르긴 하지만, 사업자는 개별 사업자로 되어 있는 게 많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서는 좀 바뀌고 있긴 하다.


원래 외국의 기업들이 국내에 안착하는 방식은 거의 비슷하다.

국내에 유통망, 혹은 오프라인 판매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기존의 유통배급사를 선정하고, 조건을 맞춰 일정기간 라이선스 판매계약을 한다. 물론 브랜드의 저작권과 디자인, 공급 조건등은 본사의 방침에 맞춘다는 조건이다.

그렇게 몇 년간 국내 시장의 ‘간’을 본다.

매출이 괜찮고, 기존의 유통망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싶은 상태가 되면 중간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해오던 유통배급사와의 관계를 끊고 본사에서 임직원을 내보내 ‘지사’를 만든다.

물론 유통배급사의 직원을 모두 흡수하는 형태다.

지사장은 한국말을 모르니까. 때로는 지사 혹은 아시아 총괄본부에 한국인 출신이 있다면 당연히 한국지사장으로 발령한다.

그렇게 하여 다시 몇 년에 걸쳐 기존의 직원들을 통해 새로운 영업관계를 구축한 후 기존의 직원들은 정리해고 한다.

이제 시장이 자신들의 브랜드를 원하고 있고, 한국의 유통구조를 알게 되니 영업이익을 한국에 남길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들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와 자본주의라는 경제구조에 맞물려 합법적으로 이뤄진다.

한국에 자리 잡은 초대형 브랜드들은 대체로 규모가 아무리 커도 ‘유한회사’라는 회사형태를 유지한다.

규모로는 주식회사가 맞을 것 같으나 유한회사는 회사 내부 자료를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유럽 혹은 미국의 본사도 대부분 대지주가 창업주의 직계혈통이자 주식 대부분을 차지한 실질 경영권자 이므로 개인기업이나 마찬가지 다.

이 흐름과 방식은 과거 유럽의 제국시대 시절과 유사한 것이다.

현지에 맞춰 현지 관리인을 임명하고, 전체적으로 인종 분열을 조장하고, 문명적으로 ‘개화’된 자신들이 현지의 ‘야만인’ 들을 교화하고 발전시킨다는 명목하에 현지의 자원을 깡그리 수탈해 가는 방식.


그러다가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값싼 인력에 눈을 돌려서 인력집중형으로 생산하는 부품들을 값싸게 생산하기 시작한다.

초가공 기술이나, 브랜드만의 독창적인 기술은 스위스에서 진행하고 생산과정에서 환경오염 물질을 남긴다거나 인건비가 많지만 그다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는 저렴하게 구성하는 방식으로 더 많은 이윤을 챙기는 것이다.

그리고 비교적 낙후된 국가일수록 세계적인 브랜드 공장을 유치한다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큰 홍보효과가 되므로 현지인들이 노동착취를 당한다 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이 또한 과거 제국주의의 자원 수탈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데 고가의 오리지널은 가격 때문에 아무래도 시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원하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품력이 있다 보니 어지간하면 3대 이상을 물려줘도 별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가격이 높아지는 결과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시장을 넓히는 것 밖에 방법이 없는데, 그렇다고 소위 헤리티지 (heritage 1. 세습 재산(patrimony) 2. 유산 3. 타고난 권리 4.(보통 God's heritage) 신의 선민(選民) 5.(보통 a heritage) 계승물 미국 [héritidʒ] 영국 [héritidʒ] 출처 다음 사전)를 전면에 내세운 콧대 높은 브랜드가 가격을 인하한다는 것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버린다는 것과 같아서, 모 브랜드는 시즌이 지난 상품들을 할인 정리하는 대신 모아서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행사를 하기도 하니 그건 안될 일이다.

게다가 전 세계의 생산 공장이 되어버린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에서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으로 거의 진품과 같아 보이는 기계식 시계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것도 시장이 커져 버렸다.

스위스 것과 유사한, 거의 똑같은 외관에 무브먼트는 일본 브랜드의 내구성 좋은 제품을 사서 쓰니 결과물도 나쁘지 않다.

물론 저작권과 특허문제로 간혹 스위스 기업들이 소송을 내곤 하지만 실제로 판결에 이르기 전에 대상이 사라지고 또 다른 공장을 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소용없다.


그런저런 연유로 스위스에서도 본래의 브랜드 외에 서브 브랜드를 만들게 된다.

디자인은 본래 유명한 자신들의 제품과 유사하되, 저렴한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이다.

아예 대놓고 R의 기술력으로 만들고 R의 헤리티지 정신을 승계하는 T의 가치. 이런 식으로 터무니없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슬그머니 내놓는다. 그것도 역사가 100년이 다되어가면 , 그간 어떠하였든 헤리티지가 없는 브랜드는 아니다.

오리지널과 브랜드 컬러가 비슷하고 연식도 오래된, 그러나 가격도 오리지널 대비 저렴하면 딱이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탐은 나지만 평생 구하기 어렵겠다던 제품의 사촌 같은 것이, 모양도 거의 유사하고 게다가 그 탐내던 꿈의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 브랜드가 보장한다고 하는데 가격도 좀 무리하면 가능하다 싶으니 지름신이 강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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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도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본래의 브랜드보다 더 높은 매출을 내놓기도 한다.

게다가 그 제품은 매뉴팩처가 아니라서, 케이스는 중국, 무브먼트는 스위스의 무브먼트 대량생산 회사 제품, 밴드는 또 어느 유럽 변방국가 제조, 이런 식으로 해서 단지 조립만 스위스에서 이뤄진 제품이다.

앞 장에서 COSC 인증을 받으려면 구성요소의 50% 이상이 스위스에서 생산되어야 하고, 생산비용의 60%는 스위스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했다.

예컨대 중국 공장에서 OEM/ODM방식으로 케이스를 만들되, 원자재 형태로 스위스의 페이퍼 컴퍼니에서 중국 공장 물건을 사들여 T사에 납품하면 그건 구성요소 50% 이상 조건을 맞추기 어렵지 않다. 또 스위스는 물가가 살인적이기로 유명하니만큼 조립만 스위스에서 해도 생산비 60% 기준 맞추기는 어렵지 않다.

얼마 전에도 프랑스의 최고급 브랜드가 인접국가에서 불법이민자들의 인권과 노동력을 착취하여 만들어진 제품을 고가로 팔아먹었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사실이 그렇다.

즉, 모양이 같으나 짝퉁인 걸 알기에 평소 차고 다니기에 좀 찝찝해하던 사람들에겐 아예 대놓고 자기 복제를 한 제품을, 그것도 명품의 사촌 격인 제품을 좀 더 대중적인 가격에 (물론 그것도 비싸다) 구매할 수 있다니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본래의 오리지널 보다 생산단가도 낮은데 더 많이 팔리니 브랜드 입장에서는 금상첨화. 내친김에 아시아 에디션. 중국 에디션 식으로 에디션이랍시고 붙여서 과거 오리지널 브랜드 제품이지만 좀 촌스러워서 (모든 게 골드로 이뤄지면 좀 할배 명품 같긴 하다. 혹은 래퍼 거나) 안 팔리는 제품을 다시 오마주 해서 (디자인 그대로. 그러나 저작권이 원래 자기네 것이므로) 내놓으면 진짜로 사촌브랜드 제품이 리미티드 에디션 (limited edition(서적 등에서 한정 부수만 발행한) 한정판-출처 : 다음 사전) 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매출과 인지도를 충분히 올린 서브 브랜드는 시기가 무르익으면 자사 무브먼트는 아닐지라도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무브먼트로 무장하고 독립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출발이 출발이기에 본 브랜드 디자인을 공유하거나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리되면 짝퉁 시계가 설 자리가 없어지나?
그것도 아니다.

브랜드의 자가복제품이 저가로 나오면 그 제품도 복제해서 (실제 OEM/ODM 생산을 했으므로) 더 저렴하게 팔 수 있는 시장이 생겼으니 윈윈이라고 해야 하나.

사정을 모르는 고객들만 일종의 호구를 잡힌 셈인데, 사후 개런티 guaranty 부분이 다르다는 점도 아셔야 하고, 보통 수리를 맡기면 심한 경우 1년이 소요될 수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물론 오리지널 브랜드의 제품은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2년을 대기해야 가능한 제품도 있으니.

그래서 성질 급한 분들은 차라리 중고제품을 찾는데 어떤 제품은 본래 판매가의 세 배를 줘도 못 구한다는 점도 알아 두시는 게 좋겠다.

거기에 특정 스위스 모기업들은 헤리티지가 가있는 브랜드와 함께 중저가 브랜드, 아니면 아예 그들이 혐오하던 전자식 쿼츠 시계를 만드는 스위스 회사를 만들어서 그룹화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그룹에서 다수의 브랜드에 대해 사용권이 있다 보면 콜라보라는 이름으로 슬림한 대중 브랜드의 몸체에 럭셔리 브랜드의 이름을 붙여 한정판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접근이 어려웠던 고가 브랜드 시계가 캐주얼 시계에 이름이 붙어 있으니 원 브랜드 가격 대비 저렴하고, 회사 입장에선 원래 저가 캐주얼 브랜드의 몸에 단지 이름만 붙여주고는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으니 이것도 윈윈이라고 해야 하나.

온라인 포털에서 '명품 세컨드 브랜드'라고 입력하시면 주르륵 뿌리와 정체가 나오니 관심 있으시면 참고하시면 좋겠다.


그. 러. 다. 면!

과연 그 제품들이 그 정도로 시간과 돈을 들일 정도로 가치가 있을까?

그것은 다음 장에서 다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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