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계는 계급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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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시계는 계급장이다
우리나라의 명품 중 막 결혼을 앞둔 신랑들이 유독 탐내는 것은 바로 손목시계다.
과거 7~80년대의 커플들은 결혼식을 올릴 때 반드시 결혼반지와 함께 손목시계를 주고받곤 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전에도 필수라고 생각했다.
서민으로서 꽤 비싼 물건이기도 했고, 평생 몇 번 안 되는 큰돈을 들여 장만하는 물건이며 거의 일평생을 간직한다는 의미도 있었으니까.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입학할 때 가장 고급스러운 선물도 손목시계였다. 지금은 거의 노트북이나 최신 스마트폰 같은 것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시계는 명품이라기보다 일상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아이들이 일단 ‘학교’라는 제도적 교육기관에 입학을 하면서부터 모든 일과들이 시간을 기준으로 진행되고, 성인들도 시계에 의존하여 하루 일과를 따라갔었으니까.
형태와 재질과 성능을 막론하고 시계라는 물건이 만들어진 시기는 고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 시간과 시각은 좀 다른 의미이다.
시간은 지구의 공전 자전 속도에 따른 기간을 의미하는데 일, 월, 년 과 같은 기간에 대한 표준이자,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천문적 경과의 기준이다.
시각은 시간 중 어느 특정한 지점을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라디오 방송에서 아나운서가 ‘현재 시각은 오후 몇 시 정각입니다.’ 할 때의 그 시각이다.
시계가 고대에도 왜 필요했을까?
씨족사회에서도 시계는 필요했을 것이다.
동물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인간들은 상호 소통을 통해 만날 시각을 정하고,
사냥을 하러 모일 시각이 필요했으며, 농경을 할 때도 어느 시기에 어떤 작물이 열리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력을, 고대 중국에서는 음력을 쓰게 되었는데, 태양력은 지구의 공전주기를 기본으로 1년을 나눈 것이고 음력은 달의 공전주기를 나눠 1달로 정한 것이다. 지금 현대에 쓰고 있는 시간은 태음태양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월의 일수가 다른 것은 기원전 로마의 황제였던 율리우스가 정한 규칙이다. 7월을 July로 서양에서 부르는 이유는 Ilulius 가 자신의 생일을 기준으로 멋대로 갖다 붙인 것인데 그 후대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월의 명칭을 바꾸기도 했으니 고대 로마권력의 흔적을 아직 쓰는 중이다.
우리가 MS사의 윈도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공무원들은 아직도 오피스 프로그램에도 한글워드가 있지만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도 이와 같다. 먼저 정한 사람이 임자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시각을 나타내는 것은 고대부터 중요했고, 특히 전쟁이 벌어지거나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에는 본국의 시각과 대양 위에서의 시각, 식민지의 시각을 맞춰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으니 정밀한 기계식 시계에 대하여 필요성이 생겼다.
역사상 완전한 기계식 시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동기능을 갖춘 시계는 서기 725년 중국의 승려 <일행>과 학자 <양영찬> 이 만들었다. 흐르는 물이 바퀴를 돌리고, 막대기와 레버가 맞물려 15분마다 북을 치고 1시간마다 종을 울렸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완전한 기계식 시계의 필요성을 그리 느끼진 않았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중세기 후반에 종교모임이 가장 중요한 행사였으므로 예배시간을 정하기 위해, 신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교회 종탑에 최초의 기계식 시계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로 출발하여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기계식 시계가 탄생한다. 과거 6,70년대에 집안에 하나씩 가지고 있던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는 벽시계. 그것을 고안한 사람은 저 유명한 갈릴레이다.
아이디어가 많았던 영국, 금속가공 기술이 좋았던 독일 위주로 점점 정밀도가 높은 시계, 휴대가 가능한 시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도 완성도 높은 시계들을 제작했는데 그것은 고전영화에 등장하는 회중시계였다.
그 정도만 으로도 굉장한 발전이었는데, 거기서 한걸음 나아가 팔목에 찰 수 있는 시계의 필요성이 나타나자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메이커가 등장했으니 그 유명한 스위스 R사의 시계였다.
당대 상황에서는 낙농국가에 불과하여 가난하던 스위스가 왜 갑자기 시계왕국이 되었을까?
당시 종교적 분쟁으로 프랑스의 기술집단들이 박해를 당하자 인접한 스위스로 이주했다.
그러면서 점차 프랑스에서 가지고 있던 시계기술을 스위스의 주요 산업으로 바꾸는 단초가 된다.
또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글라슈테라는 지역에 정밀시계를 만드는 기술자가 많았는데 나치의 침략전쟁 준비로 시계공장들은 무기공장으로 바뀌게 되면서, 역시 독일과 인접한 스위스로 많은 기술자들이 이주하였다.
그 두 가지 역사적 배경이 스위스를 시계강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셈이다.
스위스는 특히 두 가지 산업에 대하여 국가적인 사업으로 법규와 정책을 만들었는데 시계와 초콜릿이다.
시계가 중심산업이 되면서 과거 낙농국가 이자 산악 국가(농토가 부족한)이며 용병을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던 국가 (현재는 돈 때문은 아니지만 바티칸 시국의 교황 근위대는 중세부터 지금까지 스위스 용병이다 )에서 첨단 기술의 본거지가 된다. 현대의 실리콘 밸리와 같은 정도의 영향력이었다.
기계식 시계는 노동집약형인 산업이지만, 숙련공이 필요한 작업이다.
스위스의 농부들은 농번기에는 농사를, 길고 추운 겨울 동안은 집안에서 시계부품의 하청을 받아 돈을 벌었다.
스위스의 지리적 위치는 유럽의 중심부이고, 경관도 좋고 다른 나라들과 접경을 이루니 유럽 귀족계층들은 스위스에 별장이나 아예 본거지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고급 시계의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렇게 경제적인 안정이 이루어지자 귀족들만의 고급 취향이던 고가의 초콜릿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탈리아의 토리노와 접경지대여서 당시 초콜릿의 유명한 유통지와 근접했다는 이유, 양질의 낙농업을 하고 있어서 밀크 초콜릿의 원료가 좋다는 이유, 비싼 초콜릿을 소비할 유럽의 귀족들이 많았다는 이유가 모두 왜 코코아 하나 못 키울 스위스가 그토록 유명 초콜릿 제조사가 많은지에 대한 이유다.
물론 과거의 일이다.
지금 현대에도 스위스의 시계 기준은 C.O.S.C(Contrôle Officiel Suisse des Chronomètres)라는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검증기관에서(비영리단체) 인증을 받아야 한다.
내용은 아래 두 개의 기준을 모두 충족 하여야만 COSC의 인증을 받을 수 있다.
1) 구성요소의 50% 이상이 스위스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2) 생산비용의 60%는 스위스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보통 ‘명품’으로 불리는 시계들은 그 기준보다도 더 심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매뉴팩처(Manufacture)는 영어건 프랑스어건 제조라는 뜻을 나타낸다. 시계업계에서 매뉴팩처라고 하면 자체공장에서 시계를 생산하는, 기획, 디자인, 부품제조, 조립, 완성에 이르기까지 인 하우스에서 할 수 있는 메이커를 의미한다.
어찌 보면 산업혁명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고집을 고수하는 브랜드들은 전통방식을 유지한다는 이유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생산성을 높여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 낼수록 시장에서의 가치는 하락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4~19 세기까지 손목시계란 귀족이나 돈 많은 중산층 이상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 귀족들은 자신들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천민들도 흔하게 찬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물론 낮은 계층에서 손목시계란 평생 닿기도 어려운 가격을 가진 물건이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초반 까지도 대중교통에서 다른 사람의 손목시계를 순식간에 빼내서 달아나는 소매치기들이 꽤 있었으니까.
그게 스위스시계가 아닌 made in korea였음에도.
당초부터 손목시계라는 물건은 사회의 일정 계층 이상의 독점물이었던 셈이다.
현대에 휴대전화 하나로 시간, 시각뿐 아니라 다른 나라 시각도 알 수 있는 상황인데도 굳이 값비싸고 잘 안 맞으며 때로 태엽도 감아줘야 하는 기계식 시계가 적게는 수십 만 원에서 수억 원에 팔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