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페스트 2
- 위원장 동지. 사실이라면 이건 처음으로 발견된 바이러스입니다.
- 그래요? 그럼 뭐 어떻다는 거요?
병원의 수련의에게 그토록 가혹하고 냉정하던 병원장의 모습은 없었다.
잔뜩 움츠러든 목덜미와 앞으로 옹송그려진 어깨를 보면 마치 병원장이 그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비록 관료주의에 찌들어서 의사면허증 따윈 개나 줘버리라는 사고하는 병원장이었지만, 의사는 의사였다.
사실 그보다는 하필이면, 그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환자가 하필이면 하고 많은 병원 중에서 자신의 병원에 들어왔다는 부담감 때문에 끝까지 비밀에 부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보고를 안 하면 업무 태만으로 비판받을 것이고, 보고하면 또 그 나름대로 왜 초동조치를 안 했나 따위 비판을 받을 것이다.
어찌 되어도 하필 그 환자가 자신이 병원장으로 재직하는 병원에 하필이면 인사고과의 기기에 입원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 그렇지만, 위원장 동지. 아직은 그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보이는 항생제가 없으므로 일부라도 격리조치와 선제적 방어조치를 하지 않으면 그 후폭풍이…….
- 그만.
말을 다시 끊는 시안의 의료안전국 위원장을 보며 병원장은 다시 고개가 움츠러들었다.
- 동지. 이미 그 건은 알고 있소.
- 네? 이미….입니까?
- 그래. 거기 병원 이전부터 여러 다른 지역병원에서 괴질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었단 말이오. 모르는 건 아니오.
- 네? 그럼 어째서 사전 경보가….
- 병원장 동지. 당신 그렇게 순진하오? 지금 다음 달이 전인대 아니오! 이런 시기에 괴질이라니? 미쳤소?
그랬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속칭 전인대.
이 중요한 정치적 시기에 괴질 같은 게 돌면 안 된다.
있어도 없어야 한다.
- 일단. 그냥 인플루엔자라 하는 거지. 그리고 전인대가 지난 이후에 공식 발표를 하는 거요.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봐야지. '어떻게 든 말이오'
- 네. 알겠습니다. 동지
병원장은 악수를 하고 돌아섰다.
아무리 의사면허에 대한 일말의 양식은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다.
그걸 외면하는 순간 의사면허조차도 위태한 것이 현실이니까.
류신은 멍하니 창밖에 뜬 달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병실에 감금된 지 일주일.
겪어본 일 없는 지독한 열이 오르고, 목소리가 나오지 못할 정도로 목이 부었다. 전신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시고, 고열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병원에서는 해열제 정도만 주는 것 이상 아무것도 없다.
류신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 미지의 바이러스에 대한 항바이러스제도, 항생제도 발견되지 않은 지금, 이 질병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병원에서는 예외적으로 류신이 감금된 1인실이 있는 층을 전체적으로 격리하고, 류신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고 노트북을 통한 화상통화로 증상과 예후 정도를 듣고 약과 식사를 지급하는 것을 반복했다.
- 병리사의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화상대화를 하던 류신이 힘없이 묻자, 전염병 관리센터장은 잠시 눈만 끔뻑거렸다. 그러더니 카메라 저편에서 좌우를 둘러보더니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 발병 3일 만에 사망했네.
- 네? 이 정도 증상으로요?
- 잘 모르겠지만 급성 신부전 같은 증상이었어.
- 그럼 역학조사는요?
류신의 재촉에 센터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다시 조용하게 말한다..
- 병원장 지시로 바로 화장해 버렸네. 당의 지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