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우울증이다
"우울증 환자의 상당수가 수면 장애를 겪고 있으며, 수면 장애는 우울증의 중요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울증과 수면 장애는 서로 악순환을 만들 수 있으며, 헬스조선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60~90%가 불면증을 겪고, 만성 불면증 환자의 20~25%는 주요 우울장애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
라고 AI가 답을 내주었다.
처음에는 알약을 먹었다.
그러다 약에 익숙해지면 그냥저냥 하므로 또 약을 바꾼다.
그렇게 거의 2년 간을 보내다 보니 알약으로 뭔가 우울함이 없어진다는 것에 회의감을 가진다.
이래저래 알아보다 알게 된 비강으로 투여하는 우울증 치료방법을 찾아서, 멀리 있는 병원을 찾아서,
또 반복되는 온갖 검사와 진료를 통해 비강 투여 치료를 받았다.
해리증상(이인증과 비현실감 증상을 동반합니다. 이인증은 자신이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는 증상이며, 비현실감은 외부 세계가 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증상입니다. )이 동반된다고 했다.
게다가 아직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치료항목이라 겁나게 비쌌다.
그래도.
본격적인 우울감을 체감하면 돈이 문제가 아닌 게 된다.
당장 지금의 내가 너무 힘드니 돈은 부차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처음 겪은 해리증상은 생각보다 좋은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내겐 온갖 기괴하고 언짢은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내 몸이 땅 속 깊이깊이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어질어질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감각이 돌아온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좋거나 평화롭거나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던 것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안되어 우울하다는 기분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대체 이 약의 기전이 뭔가.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좋은 기분이 든 것도 아닌데 왜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는 건가.
의사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간 임상 결과 우울증에 효과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뿐.
그렇게 수회의 투약 치료를 받고 지난주에 마지막 치료가 끝났다.
물론 우울증에 기반한? 혹은 우울증보다 앞서서 시작한? 수면장애는 낫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에 다녔던 의원보다 더 많이 한 움큼의 알약을 처방해 줘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전 의원에서 근 일 년간 처방받아온 약이 중간중간에 자꾸 깨어나는 현상이 있었기에 믿고 먹었다.
오히려 아는 게 병이라고, 일부러 봉투에 쓰여있는 알약의 종류와 이름을 찾아보지 않았고 애써 무시했다.
그런 알약들의 효과와 부작용을 미리 알아둔다고 해서 내 불면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니까.
어쨌거나 새로운 수면제는 중간에 깨는 일이 적고 지속성이 있고,
이전 의원의 약처럼 낮에 수면제의 영향으로 늘어지는 현상이 없어서 좋긴 하다.
부작용은, 입맛은 없는데도 자꾸 뭔가를 주워 먹게 만들어서 체중이 불어난다는 거다.
그 부분을 담당 의사에게 말을 하니 일단은 잠을 자는 게 중요하니 체중 문제는 차후에 걱정하란다.
음.... 그건 그렇지.
그래도 중간에 안 깨고 잠드는 게 어디야.
낮에 지난밤 약의 후유증으로 뒷머리를 누가 끌어당기는 느낌 없는 게 어디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도 참을 수 없는 이 호기심 병 때문에 비강치료법의 부작용을 슬쩍 읽어보니 리바운드가 있을 수 있단다.
( 약물을 감량하거나 중지하면 약물로 조절되던 증상이 반동적으로 약을 사용하기 전보다 악화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
뭐. 아직은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어쨌거나, 우울증도 병이다. 병은 의사에게 보여야 한다.
병을 인정하지 않고 이겨낸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겠지.
나도 이전에는 우울증 같은 것은 그 사람 자신의 멘털이 문제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신체적으로도 주말에 8시간 내리 자전거를 타도 괜찮은 정도의 지구력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와 함께 엄습한 우울증은 내 정신력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것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찾듯, 우울증에 걸리면 우울증 의사에게 가야 한다.
나는 가끔, 아니 꽤 자주 우울하다.
때로는 근거도 없이 걷잡지 못할 정도로 우울해서, 그 순간 존재가 바사삭 사라지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우울하다.
그럴 때는 나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그럴 정도로 배려심을 가질만큼의 여유도 없다.
그냥, 그 순간 내 존재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그런 생각이 거듭에 거듭을 거푸 하여 '무능지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멀쩡해 보이는 육신으로 나 홀로 땡볕 아래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생각이 머리꼭지를 맴돌면,
나는 그 순간의 내가 진짜 나 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이것이 오랫동안 복용해 온, 몸뚱이 어딘가에 쌓였을 약의 문제인지 뇌의 일부가 고장 난 것인지 혼란스럽다.
지극히 T성향을 가진 스스로 납득이 안 되는 이 현상의 비논리성에 절망한다.
대체 왜?
그런 마음을 가질 정도로 극도의 긴장감이나 상황에 몰린 적은 과거에도 꽤 있었는데.
그러니까 병이겠지 싶다.
과거에 괜찮았다고 지금도 여전히 괜찮지 않을까 라는 마음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일 뿐.
'병'이라 인정하고 '치료'를 현실적으로 직시하며 인정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좋아질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정도로 생각하려고 한다.
근본적으로 '감기약'은 없다.
다만 감기에 수반되는 통증, 발열, 콧물, 재채기 등등의 증상들을 완화시켜주는 약을 섞어서 쓰다 보면 몸 스스로 감기를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먹으면 당장 기분이 해피해피한 약은 없다. 있다면 그건 마약일 것이고.
그것도 해피한 상태가 오래갈 수 없을 것이고, 다시 약기운이 떨어지면 더 심하게 우울해질 것이고.
그러므로 우울증에 수반하는 각종 증상들을 조금씩 낮춰주는 '도와주는'약의 힘을 빌어서 스스로 이겨나가야 하겠지.
인정하자.
난 지금 마음의 감기에 걸린 거라고.
스스로 멘털이 약해서, 의지력이 없어서, 게을러서, 나태해서, 그런 식으로 자학하지 말자.
거꾸로 우울증에 걸려서 멘털이 약해지고 의지력도 떨어지고 게을러지는 거다.
그러니 약을 꾸준히 챙겨 먹고 이겨내는 게 중요하다.